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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人]김환희 "인생 투자한 엄마에게 보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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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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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시퍼렇게 부릅뜬 눈. 앙칼진 목소리로 아빠의 폐부를 흔든다. "뭣이 중한지도 모르면서." 영화 '곡성'에서 효진이 울린 경종은 이제 유행어다. 여기저기서 인용한다. 영화에 비해 감칠맛은 떨어진다. 배우 김환희의 살기 어린 감정이 빠졌다.

"모두 나홍진 감독(42) 덕이에요." 영락없는 열네 살 소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칭찬에 키드득키드득 웃더니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너무 부끄러워요." 촬영 전으로 화두를 돌리자 다시 눈을 말똥말똥 뜬다.
여느 때보다 혹독했다. 리듬체조 대회라도 준비하는 선수처럼 박재인 안무가에게 6개월간 안무수업을 받았다. 김환희는 죽을 둥 살 둥 매달렸다. 고난도 아크로바틱을 할 만큼 유연성과 근력을 키웠다. '액션' 소리에 표정을 의도적으로 바꾸던 버릇도 고쳤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워서 뿌듯해요."

전문 기관에서 연기를 배운 적은 없다. 학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생채기만 났다. "모델 콘테스트에 돌 사진을 올렸는데, 4년여 뒤 연락이 왔어요. 철석같이 믿고 8개월을 다녔는데,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사기였죠. 엄마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김환희의 연기 스승은 어머니다. 직접 대본을 만들어 연기를 가르쳤다. 발성, 표정 등을 수시로 점검했고, 함께 인근 운동장에서 트레이닝을 했다. "제가 즐거워하니까 엄마가 인생 전부를 투자했어요. 열심히 해서 보답해야죠." 울먹이는 목소리로 김환희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 연기 가르쳐줘서 고마워. 많이많이 사랑해."
다음은 일문일답

"곡성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오디션에 참가했어요. 6개월여에 걸친 어려운 시험이었어요. 나홍진 감독은 3차 오디션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를 포함해 다섯 명이 살아남았죠. 모두 영화에서 편집된 정육점 신을 연기했어요."

"무슨 내용이었죠."
"정육점에 있는 아빠(곽도원)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신이요. '엄마가 빨리 오랴. 오늘 할아버지 제사잖아. 지금 안 들어가면 혼나'라고 쏘아붙이면, 조감독 오빠가 마지못해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 시늉을 했어요. 영화에서 경찰서에 찾아가 아빠에게 팬티와 민소매를 건네는 신과 비슷한 분위기였어요. 아빠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감정이 핵심이었죠."

영화 '곡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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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오디션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1대1 면담이었어요. 나홍진 감독 앞에서 3차 오디션에서 했던 연기를 다시 했죠. '액션' 소리에 표정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버릇이 있어서, 그걸 고치는데 중점을 뒀어요. 연기를 마치니까 나홍진 감독이 바로 답을 주더라고요. '잘 해보자'고."

"나홍진 감독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카리스마가 대단했어요. 무슨 일이 벌어져도 흥분하지 않아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근차근 수습해요. 연기를 지시할 때는 항상 배우의 의견을 물어봐요. 사실 3차 오디션까지 효진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화가 난 얼굴로 아빠를 쏘아붙였죠. 나홍진 감독은 불합격을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녀간 사랑을 보여주려고 만든 장면'이라며 설득했어요. '아빠를 친구처럼 바라봐 달라'고. 대화를 많이 해서 수월하게 촬영했어요."

"영화 경험이 처음은 아니던데요."
"박찬욱(53)·박찬경(51) 감독의 '파란만장(2010년)', 이종필 감독(36)의 '전국노래자랑(2012년)' 등에 출연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풍(2010년)'에도 출연했는데, 극장에서 거의 소개되지 못했어요."

"극장에서 곡성을 관람하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그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무서웠거든요. 눈을 감느라 절반가량을 보지 못했어요. 함께 본 친구는 울더라고요. 의기양양하던 다른 친구도 외지인의 집에서 가면이 등장하자 흠칫 놀랐고요. 다른 관객도 비슷한 반응을 보여서 흥미로웠어요(웃음)."

"효진이 곡예를 하듯 몸을 뒤로 꺾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박재인 선생님의 가르침 덕에 유연성이 크게 향상됐어요. 6개월 동안 연습하니 엄두를 내지 못한 동작도 되더라고요. 영화에서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더해져 아주 무섭게 그려졌어요."

김환희는 지난 22일 나무엑터스와 전속 계약을 했다.

김환희는 지난 22일 나무엑터스와 전속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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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동작을 하면서 표정까지 신경을 써야 했어요."
"맞아요. 몸을 꺾는 것만큼 중요했죠.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눈을 흰자만 보이도록 뒤집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았어요. 테이크(1회분의 촬영·녹음)를 많이 가지 않아서 수월하게 해낸 듯해요. 나홍진 감독이 카메라를 다섯 대나 설치했거든요.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칼을 잡는 연기도 쉽지 않았을 듯해요."
"가장 어렵고 무서웠어요. 섬뜩했죠. 촬영을 하면서도 소름이 돋았어요. 효진이 이렇게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후기를 살펴보니 외할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글이 적잖게 보이더라고요. 그럴 수가 없어요. 외할머니도 피 흘리는 분장을 하고 효진이 뒤에 있었거든요.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효진이 귀신에 홀려 살인을 저지른 것이 맞아요."

"촬영 전 따로 받은 주문은 없었나요."
"나홍진 감독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부녀간 사랑'이라고 강조했어요. 허진, 곽도원, 장소연 등 가족으로 출연한 배우들끼리 대사를 맞출 때도 '환희가 가족애를 유도해야 한다'고 했죠. 가족에게서 효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타나지 않으면 전체 흐름이 깨질 수 있다고 본 듯해요."

"긴 호흡에서 튀는 연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효진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애썼어요. 전체적인 감정 선은 나홍진 감독이 잡아줬고요. 예컨대 일광이 굿을 하는 신을 연습할 때 '더! 더! 더!'를 외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끌어올렸어요. 처음에는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놀란 가슴을 나홍진 감독과 엄마가 번갈아 안아주며 진정시켜줬죠. 막상 촬영할 때는 당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어요."

영화 '곡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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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연기를 보고 많이 놀랐을 듯해요."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이 한목소리로 '무서웠다'고 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장난을 치며 저를 피하기도 했고요(웃음). 친구들이 곡성을 많이 홍보해줬어요. 용기도 줬고요. 그동안 조명을 받은 작품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보답을 받은 느낌이에요. 새로운 내 모습을 찾은 것 같아서 뿌듯해요. 이렇게 알아가는 재미가 연기의 매력인가 봐요."

"후유증은 없나요."
"주위에서도 많이 우려하는데, 정신적 외상(트라우마) 같은 걸 겪진 않았어요. 부모님이 촬영장에서 기도를 많이 해줬거든요. 나홍진 감독도 많이 배려해줬고요. 일광의 두 번째 굿을 촬영할 때 곡예에 가까운 동작을 하다 보니 대기실에 돌아와서 녹초가 됐어요. 나홍진 감독이 단숨에 달려오더라고요. '힘들어 보이는데 내일 찍을까'라고 물어서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10분만 쉬면 문제없어요'라고 했어요."

"10분 동안 뭘 했나요."
"아빠 손을 잡고 기도했어요. 마음을 가다듬고 다섯 테이크를 더 찍었어요. 아마 오전 여섯 시쯤 끝났을 거예요. 바로 숙소에서 눈을 붙였어요. 일어나보니 오후 두 시더라고요. 밥이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 과자를 먹고 기운을 차렸어요(웃음)."

"영화에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서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쟁쟁한 배우들 틈에서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한동안 잠을 못 이뤘어요. 그러다가 '너는 아역배우가 아니라 배우야'라는 나홍진 감독의 한 마디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래, 나는 배우야'라는 생각을 하고 연기했죠."

"배우 생활을 하니까 아무래도 학업에 소홀할 듯해요."
"그렇지 않아요. 최근 시험에서도 영어, 수학, 미술에서 90점 넘게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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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려움은 있을 텐데요."
"초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서는 수업을 한 시간만 빠져도 피해가 크더라고요. 학습지로는 진도를 따라잡는데 한계가 있어서 얼마 전부터 수학학원을 다녀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요."

"배우로 활동하다 보니 학교에서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울먹이며)힘들죠. 많이 힘들어요. 반기는 친구들도 많지만, 안 좋게 보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험담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더라고요. 무시해도 될 일이지만 억울하더라고요."

"질투가 아닐까요."
"친한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질투니까 무시하라'고. 그런데 자꾸 남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가장 좋아하는 일이예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당연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요. 스크린 밖에서는 착한 일을 할 거예요. 션·정혜영 부부처럼 많은 이들에게 봉사와 사랑의 기쁨을 전하고 싶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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