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19일, 17대 대선의 승리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이 전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고(故)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시대가 끝나고 보수정권의 시대가 열렸다. 보수에서 진보로, 다시 진보에서 보수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뤄짐에 따라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성숙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정권 교체 이후 한국 사회는 극도의 대결 양상을 보였다.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이 맞섰고, 보수와 진보로 사회가 나뉘었으며, 국회 역시 날치기와 육탄 저지의 어두운 시절을 겪었다.
국회 상황 또한 다르지 않았다. 18대 국회는 예산안과 한미 FTA 비준동의안, 미디어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금산분리완화법, 친수구역특별법, 아랍에미리트(UAE) 파병동의안 등 여야 간 첨예한 입장 차이가 벌어질 때마다 '날치기'와 야당의 실력 저지가 반복됐다. 본회의 표결 저지를 위해 야당의원들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면 여당 의원들은 완력을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는 활극은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인 1577만표를 얻어 당선됐다. 하지만 18대 대선은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대선에 개입한 사건 때문에 논란이 됐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은 박 대통령 1년 차 정국을 흔들었다. 대선 당시 언급됐던 서해북방한계선(NLL) 관련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도 정국을 파국으로 이끌었던 이슈였다. 이 때문에 대선을 치른 지 3년이 지난 2015년에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선거 개표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 전반기 임기에서 대선 불복 논란이 가장 큰 정치이슈였다는 사실은 이 기간이 얼마나 갈등의 시기였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난 10년 우리 정치가 이처럼 갈등과 대결 구도로 보였던 것은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지도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흔히 3김시대로 불렸던 거물 정치인의 시대를 거친 뒤에 한국 정치는 새로운 정치 권력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대선 후보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여당은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야당은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라는 형태의 계파 정치가 형성됐다. 정당 공천 등이 민주적 정당성에 기반하기보다는 정치권 내부의 역학관계, 계파 등에 의해 좌우됐다. 계파 갈등이라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줄곧 여야 간의 갈등을 통한 적대적 공생의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앞으로 10년, 문제를 일으키는 정치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 선거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지거나, 진보와 보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 사회가 이념 갈등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과정의 정당성을 발판으로 결과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정치의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 정당 내부 구조에서도 정당이 정치 엘리트 간의 이합집산의 틀을 벗어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계파 정치를 끝내고 정파 정치를 열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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