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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②]헤밍웨이는 '미로의 광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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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농장'구입해 애지중지…스페인을 담은 그의 문학세계 이룬 '영감의 원천'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1921년 스물 두 살의 미국인 청년이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파리에 도착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당시 파리에는 스물여덟 살의 스페인 화가가 머물고 있었다. 파리에서 연 첫 전시회의 실패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다시 온 젊은 화가에게는 6개월 넘게 매달린 그림이 있었다. 화가는 파리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사겠다는 화랑이 없어 한 카페에 전시됐다. 운명적인 만남은 여기서 이뤄졌다. 작가를 꿈꾸던 미국인 청년은 화가의 그림에 반했고 이후 그에게는 거금인 5000프랑을 들여 구입했다. 아내를 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미국인 청년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를 반하게 한 스페인의 화가는 그 유명한 호안 미로다. 둘 다 20대의 청년이었다. 첫 작품을 내놓기 전 특파원으로 파리에 머물던 헤밍웨이와 역시 화가로 명성을 얻기 전의 호안 미로를 연결해준 작품은 '농장'이다. 당시 헤밍웨이는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파리 주재 특파원이었다. 첫 작품집 '세 편의 단편과 열편의 시'를 발표하기 전이었고 습작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미술에 조예가 깊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스물두 살 헤밍웨이는 호안 미로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호안 미로 '농장'

호안 미로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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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의 초기작인 '농장'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주로 알려진 그의 사실주의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화가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이다. 그는 스페인 모트로이그에서 야외에 이젤을 세우고 달팽이, 도마뱀, 풀잎 등 농장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 세밀하게 캔버스에 옮겼다고 한다.

미로의 고향 카탈루냐의 농장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에 헤밍웨이는 흠뻑 빠졌다. 그는 이 작품을 얻은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택시 지붕이 열려 있던 탓에, 바람이 순풍을 맞은 돛처럼 캔버스를 부풀려놓았다. 일행은 운전기사에게 천천히 가자고 부탁했다. 집에 와서 그림을 벽에 걸었다. 결코 나는 이 그림을 세상의 그 어떤 그림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미로도 헤밍웨이가 그림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헤밍웨이의 집을 방문해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당신이 농장을 갖게 돼 매우 기쁘다"라고 했다고 한다.

젊은 헤밍웨이는 이 작품이 바로 스페인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 작품에는 스페인에 갔을 때 스페인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고, 스페인에 없을 때나 스페인에 갈 수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도 들어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완전히 다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그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헤밍웨이에게 미로의 '농장'은 스페인 그 자체였던 셈이다.
미로의 '농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헤밍웨이

미로의 '농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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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농장'에서 받은 감명이 헤밍웨이와 스페인의 인연을 시작되게 했는지 모른다. 헤밍웨이에게 처음 명성을 안긴 소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다. 또 그는 스페인의 투우를 다룬 '오후의 죽음'을 썼다. 결정적으로 그는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자 특파원 자격으로 네 차례 스페인을 찾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했다.

헤밍웨이에게 미로는 어떤 화가였을까. 그는 "미로는 점 하나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이번 세기 유일한 화가"라고 했다. 그는 미로의 작품을 곁에 두고 그가 표현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소설에 투영하고자 했을 것이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쿠바에서 완성했다. 그가 쿠바에서 살았던 저택 '핑카 비히아(Finca Vigia)'에는 지금도 미로의 '농장'이 걸려 있다.('농장'의 진품은 워싱턴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 보관돼 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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