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사람-81년전 오늘 돌아간 수학자 에미 뇌터,아인슈타인이 극찬했는데
14일은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가 세상을 떠난 지 81년이 되는 날이다. 1935년 4월 14일 뇌터가 사망하자 아인슈타인은 뉴욕타임스에 추도문을 기고해 "여성의 고등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며 창조성이 풍부한 수학의 천재였다"고 썼다. 그러면서 "진정한 예술가, 연구가, 그리고 사상가들은 주목을 받지 못해도 자기 인생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노력의 열매는 한 세대가 후대에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공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뇌터가 수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학 등록조차 어려웠다. 뇌터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에서 학생으로 등록도 하지 못하고 청강으로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성 등록이 허용되자 수학과 학생으로 등록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는 괴팅겐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현대 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다비트 힐베르트 등과 함께 일했다. 그런데 괴팅겐 대학도 처음에는 여성인 뇌터가 강의를 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힐베르트는 편법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강의를 뇌터에게 맡겨야 했다.
강의를 해도 뇌터는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교수 임용은 대학 평의원회에서의 투표권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뇌터의 임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힐베르트는 이들에게 "교수 후보자의 성별이 자격을 허가하는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평의원회는 목욕탕이 아니다"고 일갈했고 그제야 뇌터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
다시 서머스의 얘기로 돌아오면 아인슈타인도, 힐베르트도 동의하지 않았던 "여자는 수학을 못 한다"는 말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유력했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자리도 여성인 재닛 옐런에게 넘겨야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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