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과학인들이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들어선 적은 있지만 대부분 득표에 도움이 되는 의사나, 약사 등 정치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분야가 많았고 순번도 후순위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각 당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의료계 출신 과학인들을 1번으로 선정했다.
실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상상의 지평을 엄청나게 넓혔다. 체력으로는 사자에 못 미치고 빠르기로는 말에도 미치지 못하며 새처럼 날아다니지도 못하는 인간이 지구라는 생태계의 최정점에 서게 된 것은 '사고하는 능력' 덕분인데 그 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된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는 구글 신(神)의 지배하에서 살게 될 것이다"는 묵시록적 운명론이 SNS상에 떠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matics: 과학, 기술, 엔지니어링, 수학)에 대한 갑작스러운 정치적 대우와 사회적 열광이 어쩐지 일시적인 거품처럼 느껴지는 우려가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그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과학기술 담당 부처는 1962년 경제기획원 내의 일개 국에서 출발해 1967년 과학기술처로 확대 개편되고 1998년에는 과학기술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과학기술부로 승격됐다. 그것이 최정점이었다. 이후로는 과학기술 정책이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과기부의 기능이 일부는 산업자원부, 일부는 정보통신부로 나눠졌고 남은 일부는 교육부와 합쳐졌다. 이후로도 과학부의 독립은 요원한 상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과학정책 기능이 가 있지만 미래부는 이름 그대로 기술의 상업적 측면이 강조된 부처이다. 당장 창조경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부처에서 기초과학을 진득하게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순수과학자들의 국회진출이 알파고가 불러온 1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으려면 국회에 진출하게 되는 과학자들 역시 자기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여러 명 배출한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자를 단 한사람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부 잘하는 이과 학생들이 모조리 의대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현실도 차제에 바꿔야 한다. 정치와 국회가 소모적 정쟁의 터가 아니라 한국의 과학을 북돋게 하는 진앙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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