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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동화약방의 그 올곧은 정신,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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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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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기업사를 가르치다 보면 앞 부분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있다. 대개 조선왕조가 무너져 가던 1890년대 후반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제약업계의 선각자 두 사람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한방과 양방을 조합한 약'을 선보여 크게 성공했다. 한 사람은 제생당약방의 이경봉으로 '청심보명단'을, 또 다른 사람은 궁 선전관 출신의 민병호로 '활명수'를 만들어 팔았는데 약품이 귀하던 시절이라 큰 인기를 모았다.

이경봉은 제물포항(지금의 인천)에서 들어오던 양약재와 한약재를 섞어 '청심보명단'을 만든 다음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기생들이 타는 인력거에 '청심보명단' 광고판을 붙이는가 하면 당시에 희귀하던 양복을 갖춰 입고 제물포와 노량진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약을 팔았다. 게다가 1909년 콜레라가 창궐할 때는 '청심보명단'이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도 했다.
한편 민병호는 궁중약방의 비법에 서양 선교사로부터 배운 서양약제기술을 더해 활명수를 만들었다. 활명수가 큰 인기를 끌자 유사상품이 마구 등장하는 바람에 '부채표'라는 상표를 만들어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민병호는 아들 민강에게 동화약방의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제생당약방 이경봉의 화려한 마케팅과는 달리 광고나 마케팅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광고를 해도 약방의 사명, 활명수를 만든 근본적인 취지 등에 초점을 맞춘, 다소 점잖은 방식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박상하 작가의 '한국기업성장100년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하지만 이 두 선각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기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경봉은 콜레라로 사망했고 민병호, 민강 부자는 독립운동의 연락기지 역할에 독립운동 자금책으로 활동하느라 일본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고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동화약방은 정미소를 하던 윤창식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윤창식, 광열 부자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동화약품은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시초라 할 수 있었던 두 회사의 두 선각자 이야기는 척박한 시절에도 혁신적 마케팅은 있었으며 한방과 양방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혁신도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비록 최초의 설립자는 아니더라도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현실을 바로잡아보려 노력했던 민족기업가의 올곧은 정신을 이어받은 기업이어서 동화약방, 아니 동화약품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지금의 동화약품을 보면 그 시절의 혁신도, 사회적 소명을 다하려는 사명감도 없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최근 일련의 과정을 보면 오너 일가에게는 그 정신이 빛바랜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윤광열 명예회장으로부터 윤도준 회장으로 승계가 이루어진 후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기보다는 답보상태 또는 퇴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만년 히트상품 활명수나 후시딘 등의 일반의약품 매출에 기대어 전문의약품, 특히 신약 개발을 게을리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일반의약품 매출에 비해 현저히 부진한 전문의약품 매출액 규모가 이를 방증한다. 더구나 2013년에는 제약업계의 고질병인 리베이트 스캔들에 연루되었고 결국 올해 초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그런 가운데 지난 4년 동안 대표이사를 네 차례나 교체해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오너의 불신과 전횡을 보여주었다. 이들 전문경영인들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음은 물론이고 불과 7개월 만에 교체되기도 했다.

지금 제약업계는 1897년 최초의 제약사인 동화약방이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미약품의 성과와 오너의 배포 있는 성과 분배는 우리에게 '멋진 경영자' '좋은 기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셀트리온과 그 외 많은 기업들의 혁신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120여년 전 놀라운 혁신을 보여주었고,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려는 용기를 보여 주었던 동화약품이야말로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기업의 전형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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