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봉은 제물포항(지금의 인천)에서 들어오던 양약재와 한약재를 섞어 '청심보명단'을 만든 다음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기생들이 타는 인력거에 '청심보명단' 광고판을 붙이는가 하면 당시에 희귀하던 양복을 갖춰 입고 제물포와 노량진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약을 팔았다. 게다가 1909년 콜레라가 창궐할 때는 '청심보명단'이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선각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기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경봉은 콜레라로 사망했고 민병호, 민강 부자는 독립운동의 연락기지 역할에 독립운동 자금책으로 활동하느라 일본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고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동화약방은 정미소를 하던 윤창식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윤창식, 광열 부자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동화약품은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시초라 할 수 있었던 두 회사의 두 선각자 이야기는 척박한 시절에도 혁신적 마케팅은 있었으며 한방과 양방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혁신도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비록 최초의 설립자는 아니더라도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현실을 바로잡아보려 노력했던 민족기업가의 올곧은 정신을 이어받은 기업이어서 동화약방, 아니 동화약품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지금의 동화약품을 보면 그 시절의 혁신도, 사회적 소명을 다하려는 사명감도 없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최근 일련의 과정을 보면 오너 일가에게는 그 정신이 빛바랜 것처럼 보인다.
지금 제약업계는 1897년 최초의 제약사인 동화약방이 설립된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미약품의 성과와 오너의 배포 있는 성과 분배는 우리에게 '멋진 경영자' '좋은 기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셀트리온과 그 외 많은 기업들의 혁신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120여년 전 놀라운 혁신을 보여주었고,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려는 용기를 보여 주었던 동화약품이야말로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기업의 전형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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