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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X파일] 양궁선수와 슈퍼女사장 ‘위험한 불륜’

최종수정 2016.02.16 08:38 기사입력 2016.01.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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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녀 남편' 살해 후 중국·일본 도피행각, 20년 만에 귀국…공소시효 지났다고 착각해 자수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공소시효 종료 20분 전. ‘유괴 살인’ 용의자(오연아)가 경찰(김혜수)과 마주쳤다. 어찌 된 일인지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째깍째깍 시간은 계속 흐른다. 20분의 시간이 흐르면 15년 전 소녀를 유괴해 살해했던 이 여성에게 ‘죄’를 물을 수 없게 된다.

경찰은 속이 타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지만, 드디어 자정이 지났고 ‘유괴 살인’ 사건 공소시효를 넘기고 만다. 명품 옷과 가방, 구두로 치장한 그 여성은 묘한 웃음을 보이며 경찰서를 빠져나가려 한다. tvN 드라마 ‘시그널’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상상의 결합이다. 시그널에 나온 공소시효 관련 에피소드는 그저 ‘상상 속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

시그널 숨어있는 1인치 / 사진=tvN 시그널

시그널 숨어있는 1인치 / 사진=tvN 시그널


공소시효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들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착각’에 빠져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도 있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20년 전인 1996년 대구 달성군에서 벌어졌던 살인과 시체유기 사건의 실체를 공개했다. 그 사건의 주인공들은 영화에서도 쉽게 접하기 힘든 ‘엽기 행각’을 이어갔다.
전 양궁선수 A씨(범행 당시 21세)와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여사장 B씨(당시 28세)는 ‘위험한 불륜’, 황당하고 끔찍한 불장난을 벌였다.

B씨는 양궁선수 합숙소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했다. A씨는 슈퍼를 이용하다가 B씨를 알게 됐고, 유부녀인 B씨와 사귀게 됐다. 그런데 B씨가 남편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A씨는 내연녀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했다.

A씨는 1996년 12월 B씨 남편(당시 34세)을 불러내 B씨와의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에 응할 리 없었다. A씨는 B씨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A씨는 이날 B씨 남편 시체를 고속도로 옆 수로 안에 집어넣은 뒤 불로 태웠다.

B씨 남편 시체가 경찰에 발견된 시점은 1997년 6월이다. 그렇다면 A씨와 B씨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수사망을 피해 도피생활을 이어갔다. 경주, 군산, 인천 등지에서 16개월간 숨어다녔다. 만약 그들이 15년을 그렇게 도망 다니는 데 성공했다면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내에서 수사망을 피해 15년간 도망 다니는 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A씨는 1998년 4월 여권위조업자를 통해 여권을 위조한 뒤 일본으로 밀항한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2년 6월 도박 브로커 활동 등으로 돈을 마련하고 중국으로 밀항한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정착(?)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A씨와 B씨는 엉뚱한 행동을 하고 말았다. 2012년 초 공소시효 15년이 완성됐다고 판단한 그들은 친인척들에게 연락해 중국 내 자신들의 보유재산을 국내로 반입하려고 했다.

끔찍한 행동을 저지른 뒤 15년이 넘는 도피행각을 이어갔던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신의 신분을 노출해가며 국내로 들어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위조여권을 통한 국내 밀항은 실패하고 만다. 2015년 11월 그들은 더욱 대담한 행동에 나선다. '주 상하이총영사관'을 찾아가 밀항 사실을 자수한 것이다.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공식 절차를 통해 국내로 돌아오려는 목적이었다. 1996년 살인 및 시체 유기 범행은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바탕에 깔렸다. 중국 공안당국에 인계돼 2개월간 억류돼 있던 A씨는 “신속하게 대한민국으로 보내 달라”며 단식투쟁까지 했다고 한다.

[법조X파일] 양궁선수와 슈퍼女사장 ‘위험한 불륜’

A씨와 B씨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이후인 2014년 4월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이 맞다면 실제로 처벌을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찰은 A씨와 B씨, 특히 B씨 주변 인물들의 수상한 행적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B씨 언니 부부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을 2번 다녀왔는데 숙박업소 예약도 없이 항공편만 예약하고 중국여행을 다녀왔다는 진술을 의심했다. 검찰은 B씨 언니 집을 압수수색한 뒤 A씨와 B씨가 1988년 4월 일본으로 밀항한 사실을 밝혀냈다.

양궁선수와 슈퍼마켓 여사장이 꿈꿨던 완전범죄는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공소시효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일반인이 공소시효의 복잡한 법적 판단 기준을 어떻게 알겠는가.

흔히 자신의 범행 시기에서 일정 기간(A씨 사건 당시는 공소시효 1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규정이 있다.

쉽게 말해 공소시효를 피해 보겠다고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헛수고라는 얘기다. 살인죄와 관련한 공소시효는 25년까지 늘어났다가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2015년 7월 말을 기준으로 그 전에 범한 살인죄라도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면 해당 사건은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끝까지 추적해 살인범을 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공소시효 폐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A씨와 B씨는 일본과 중국 도피 과정에서 어떤 기분으로 살았을까.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나왔다.

내연녀 언니의 주거지에서는 B씨가 일본 도쿄의 ‘디즈니랜드’, 중국 ‘만리장성’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발견됐다.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B씨 남편 가족들이 한 맺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연녀 B씨는 유유히 관광을 즐겼다는 얘기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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