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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사진, 수묵화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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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와 조선 진경산수 기법 접목

'임채욱 사진전' 한지에 전통회화 표현
8년간 50번 이상 산 오르내리며 비경 담아내
금강산 비해 저평가된 미적·역사적 가치 재해석


임채욱 作, '설악 1601'.

임채욱 作, '설악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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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설악(雪嶽)의 겨울은 고요하고 웅장하다. 눈에 덮인 창칼 같은 바위, 굽이치는 능선은 수묵화다. 설경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산. 설악은 동양화의 필선처럼 산의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깊은 산골짜기엔 사람들이 쌓고 간 수많은 돌탑들이 눈사람이 되어 섰다. 이들을 가지만 남은 숲이 에워싼다. 겨울이 아니어도 바위와 폭포, 벼랑과 비탈로 빼곡한 설악의 아름다움은 다채롭다. 드물게 운무(雲霧)가 휘감은 설악은 경이롭다. 임채욱(46)이 카메라에 담은 설악산이 그렇다. 흑백으로 다가오는 설악의 절경은 압도적이다.
임채욱은 설악산을 예찬한다. 우리나라 어느 산을 가도 설악만큼 수려하면서도 장엄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8년 동안 설악에 올랐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설악의 겉모습이 아니다. 사진은 그가 설악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매체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사진에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기법을 접목해 '설악산의 정신'을 담고자 했다. 그의 사진에는 옛 그림에서 보이는 바위의 명암 표현, 나무와 산을 그리는 준법 등 수묵화의 매력이 살아있다.

임채욱이 설악을 한지에 전통회화 기법으로 담은 대형 사진 60여점을 선보였다. 전시가 시작된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는 지하 4층에서 1층까지 관람 동선이 이어진다. 전시회 개막 하루 전인 5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는 "그 동안 설악산을 쉰 번 이상 올랐다. 최근에도 2박3일 일정으로 수차례 다녀왔다"고 했다.

임채욱 作, '설악 1603'.

임채욱 作, '설악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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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作, '설악 1409'.

임채욱 作, '설악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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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作, '설악 1624'.

임채욱 作, '설악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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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作, 부처바위

임채욱 作, 부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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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지난 2008년부터 산을 주제로 한 작업을 하면서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 등반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왜 그토록 설악이 중요한지 물었다. 임채욱은 "설악산과의 인연은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시작됐다. 수학여행을 그곳으로 가 수묵화를 그렸다. 대학시절엔 울산바위를 그렸다. 불자이기도 해서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진신사리탑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설악산은 옆에 붙어있는 금강산에 비해 역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제대로 연구되거나 가치가 평가되지 못했다. 설악산을 더 알고 싶어 많이 다녔다"고 했다.

작가에게 설악산은 단순히 등산 코스가 아니다. 인문학적 깨달음의 흔적을 찾아 카메라에 담기 위한 여정이다. 그는 줄곧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길에 대해 설명했다.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을 썼다. 이곳에서 한 시간을 더 오르면 겸재 정선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이 5년 동안 살았던 영시암이 나온다. 김창흡은 진경산수화를 탄생시킨 조선시대 문예부흥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문인이다. 설악산을 소재로 한 시와 '설악일기', '동유서기', '유봉정기' 등 기행문 세 편을 남겼다. 영시암에서 조금 더 오르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이 수행하며 스님이 된 곳, 오세암이 있다. 그리고 그 위가 봉정암이다. 해발 1244미터m에 있는 봉정암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 백담사부터 이곳까지 일고여덟 시간이나 걸린다. 봉정암에는 진신사리를 품은 오층석탑과 부처 옆모습을 닮은 '부처바위'가 있다. 부처바위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채 뒷담 너머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임채욱은 "과거 설악산 그림이 많지 않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워서였다. 한계령과 미시령을 넘어야 하고, 산이 매우 깊어 오르려면 며칠이 걸렸다. 이에 비해 금강산은 상대적으로 가기가 편했고, 산 아래에서 감상하기도 쉽다. 금강산에 대한 미술사 연구가 집중된 이유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설악산 작업을 하며 과거에 이 산을 그린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조선후기 화원 화가 김홍도와 김하종이 있었다. 김홍도는 금강산 그림을 그리러 가던 길에 설악산의 토왕성폭포, 흔들바위 등 넉 점을 남겼다. 김하종은 봉정암에서 가까운 쌍용폭포와 설악전경을 그렸다.

임채욱 作, 설악산 육담폭포

임채욱 作, 설악산 육담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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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작가

임채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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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김창흡의 기행문을 참고해 찍은 작품들과 토왕성폭포, 쌍용폭포 등 설악의 숱한 폭포들, 높은 곳에 올라 마주한 장대한 전경이 걸렸다. 특별 제작한 프린트용 한지에 우리네 수묵화의 가치를 절묘하게 결합한 사진들이다. 먹의 필선과 농담, 여백의 멋과 한지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졌다. 일부 작품은 일부러 구겨서 평면인 사진에 입체감과 명암을 더하거나 서로 엮어 영상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산이 나의 인터뷰에 응해준 작품들"이라며 "산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제안했다. 그는 설악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는 소식에 걱정스러워했다. "현재 케이블카가 있음에도 정상 부근에 또 케이블카를 설치해 철주를 아홉 개나 박으려 한다. 관광단지화 되는 것은 설악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미술평론가 김준기(47)는 "임채욱은 설악산을 다룬 고전 문학과 회화를 찾아냈고 전통 회화를 전공한 자신의 감성을 담아 회화 사진술을 펼쳤다. 고전과 동시대성의 결합에서 그가 추구한 것은 독창적인 스타일만이 아니다. 그는 설악산의 역사성과 정신성을 공유하는 예술 공론장을 펼친다"며 "그의 작품에 담긴 서사는 설악산의 가치를 생태 의제로 확장한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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