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 운영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에서 예산정책처의 예산 심의 당시 속기록 중 일부다.
▶조원진 위원 : 지금도 능력이 많아 가지고 엄청 일을 잘 한다고 소문나 있던데, 제가 볼 때는 올해 정도 수준으로 하십시오. 저는 증액 반대합니다.
논란이 된 예산은 비용추계 업무 관련예산이다. 예산정책처는 올해 3월19일부터 재정이 필요한 모든 법안에 대해 비용추계를 전담하기로 했다. 법을 만들 때 얼마나 돈이 드는지 제대로 따져 보자는 취지다. 이같은 절차를 두는 것은 어려운 나라 재정 상황을 감안해 입법의 신중성을 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용추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지난해 4월 요청했지만 올해 7월 10일에야 인원이 증원됐다. 법 시행 전부터 전문적인 업무를 감당할 인력의 필요성을 요구했지만 1년 3개월이 걸린뒤에야 인력이 증원된 것이다.
소위 예산심사 전과정에서 조 원내수석부대표는 예산정책처 예산안에 대해 단 하나의 사업도 증액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반대 이유로 "지금 예산정책처가 여러 가지 보고서를 내는데 그 보고서를 한번 읽어 보세요. 저로서는 수용이 안 돼요. 수용 자체를 못 하겠다니까요. 당사자가 돼 보면 압니다. 예산정책처가 그런 보고서를 냈는데 제가 수용이 안 된다니까요."라고 말했다. 예산정책처 분석보고서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산정책처가 이처럼 곤혹을 치른 것은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산정책처는 입법부의 예산 심의, 재정 감시를 위한 대표적 감시장치이지만 수년째 정부 여당으로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가령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예산정책처와 대립을 벌였다. 올해에는 추가경정예산 예산집행의 문제를 두고서 두 기관이 직접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예전에도 기재부는 예산정책처의 분석자료를 기사화한 경우에 해당 기사에 해명 또는 반박을 통해 예산정책처 분석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감시자 역할을 예산정책처가 맡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드러내기 싫은 사실을 꼬집는 예산정책처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 원내수석부대표가 "지금도 능력이 많아 가지고 엄청 일을 잘 한다고 소문나 있던데" 등의 표현을 써가며 비꼬는 것도 이같은 사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국회 입장에서 보면 예산정책처는 입법부의 권위와 실력을 담보하는 장치다. 입법부로서는 예산정책처의 날카로운 지적이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여당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된다. 비판 대상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당은 번번이 예산정책처와 대립각을 세운다.
법안의 비용추계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낸 법인데도 불구하고 한사코 인력 증원에 나서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력을 배정하고는 예산을 줄 수 없다고 하더니, 예산을 받기 위해서는 감사원 감사를 받으라고 식이다.
이같은 여당의 반감 표현은 꽤 오래된 일이다.
가령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에 예산정책처가 국가 주요 사업에 대한 평가 업무를 할 수 없게 할 뿐 아니라 조사·분석 자료를 의정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제한하고 외부에 알릴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기도 했다. 더욱이 이 법에는 공무원이 직무 범위를 넘어 일할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까지 있었다. 맡긴 일보다 더 일을 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시점에서 예산정책처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진다. 더욱이 정부 정책에 대하여 전문성을 갖추고 비판과 문제점을 할 수 있는 기관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산정책처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예산정책처가 제 일을 잘해 정부의 재정집행과 예산편성의 문제점을 지적할수록, 조직이 시련의 순간을 맞게 된다는 점은 문제적 상황임에 틀림없다. 재정건전성의 파수견 예산정책처의 입장이 궁색해지고 있다는 것은, 재정건전성 문제의 또 다른 위기의 징후로 봐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위기가 닥쳐도 아무도 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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