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원본보기 아이콘
◆색깔= 꽃과 나비, 그리고 숲 속의 풍경들이 빚어내는 빛의 향연은 참 곱습니다. 빛의 고움은 선명한 원색들이 자아내는 설레는 기분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색동저고리의 빛깔이 고운 건 빨강과 노랑과 파랑, 그리고 녹색이 서로 곁들여지면서 생겨나는 눈의 잔잔한 흥분일 겁니다. 반드시 원색만이 '곱다'로 표현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흰색의 깨끗함, 검은색의 깨끗함도 충분히 곱습니다. 모시 적삼도 곱고 검은 치마도 곱습니다.


◆소리= 영롱하게 울리는 소리도 곱다고 말합니다. 새소리, 물소리도 곱고, 피아노 소리, 바이올린 소리도 곱습니다. 여인의 청아한 목소리도 곱다 합니다. 소리의 고움이란, 그것이 조금 가늘고 여려야 할 듯합니다.

◆선(線)= 고운 선은 함부로 벋어나가거나 헝클어진 선이 아니라 조심조심 둥글어지는 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굵은 선은 곱지 않고 가늘게 이어지는 선이 곱습니다. 시원스럽게 벋어나가는 선도 고울 때가 있지만, 그것도 마감은 어질게 굽어들어야 합니다.


◆결= 고운 결은 거칠고 불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가늘면서 일정한 리듬이 있는 결이라야 합니다. 결은 부드러운 느낌과 함께 있어야 고와지고, 고운 선들이 온화한 파도를 타는 결이면 더욱 고울 겁니다. 털이나 머리칼도 잘 눕고 잘 쓸면 고운 결이 됩니다. 딱히 결은 아니지만 아주 잘게 잘 부서진 것도 곱다고 말합니다. 곱다는 말이 신기한 것은, 색과 소리와 선과 결이 아닌, 다른 것에는 쓰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쁨= 곱다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하는 훌륭한 형용입니다. 고운 색시는, 한 여인의 젊고 애잔한 아리따움과 수줍음과 불안과 서러움을 모두 담습니다. 고운 마음씨는 착한 마음씨보다도 더 맑고 개결하게 우리를 흔듭니다. 뒤태가 고운 사람은 요즘의 S라인이나 W라인 따위의 직설적 매력보다 훨씬 깊고 은근합니다.


◆말= 고운 말은, 말의 고운 빛과 결이 제대로 살아 있는 말이기도 하고 부드러운 말이기도 하고 거칠지 않고 억세지 않은 말이기도 하고 그 내부에 둥글고 어진 선(線)을 지닌 착한 기운이 깃든 말이기도 하고 불순한 의도로 주위를 괴롭히지 않는 무공해(無公害)의 언어입니다.

AD

◆조심= 그보다 더 고운 '고움'을 나는 어린 시절 사투리로 배웠습니다. "곱게 다뤄라" "곱게 곱게 쥐어야 안 다쳐" 이렇게 말할 때의 곱게와 곱게 곱게는 행동의 조심(調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살살'이란 말과 비슷하지만 살살은 다루는 사람 쪽의 '힘 빼기'를 가리키는 데 반해 곱게는 다뤄지는 대상의 안전과 무탈을 표현합니다. "곱게 사랑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내 귀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사랑을 어떻게 곱게 하는가. 혹시 이 사랑에 그가 다칠까, 아플까, 외로울까,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곱게 사랑하기란 걸 알았습니다.


◆깨끗함= 돌이켜 보면, 당신을 처음 만날 때 내 탄성도 그것이었습니다. "그 사람, 참 곱다." 인물이 곱다거나 맵시가 곱다거나 태도가 곱다거나 행동이 고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태가 고운 사람.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정결한 고움이야말로, 나를 설레게 하고, 눈뜨게 하는 마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