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새겨진 문구로, 익살과 재기를 과시한 사람 중엔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작가, 버나드 쇼(1856~1950년)가 손꼽힌다. 그가 직접 주문한 비명(碑銘)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번역문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 읽었던 명언집에도 있었던 것 같다. 1984년 대언론인 김중배의 세평(世評) 칼럼 '그게 이렇지요('권력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나갔다)'에도 그런 표현이 보인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다'라는 번역은 stay around에서 나온 것 같다. 이 말은 어느 곳의 부근을 어슬렁거리며 멀리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 말솜씨로 먹고산 작가의 고도로 계산된 위트가 있는 문장이니만큼 대충 해석해서 묘미를 즐기려고 하는 것은 맹인모상(盲人摸象)에 가깝다. 저 문장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와 같은 우리식의 구어체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다. 문제는 이 오역이 버나드 쇼의 대표적인 입담처럼 우리나라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인생을 우물쭈물하며 산 것이 포인트가 아니며. '이럴 줄 알았다'는 방식의 후회를 의미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죽음 앞에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써놓은 것일 뿐이다. 오역에서 교훈을 얻으며, 섣부른 깨달음을 전파하지 않는 게 우스꽝스러운 언어오염을 줄이는 길이 아닐지.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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