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효종이 죽은 뒤 임금의 어머니(계모) 조대비가 상복(喪服)을 몇 년 입느냐를 두고, 두 정파(서인과 남인)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집권 서인은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이므로 모친이 상복을 1년 입어야 한다고 했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장자와 다름없으며 장자의 예에 따라 2년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1673년 효종의 왕비(인선왕후)가 죽었다. 남인은 맏며느리이므로 1년상을 주장했고, 서인은 둘째며느리이므로 8개월이 마땅하다고 외쳤다. 이 논쟁으로 서인의 거두였던 송시열이 유배되고 정권은 남인에게로 돌아갔다.
이 두 차례의 정쟁을 예송(禮訟)이라고 하는데 '예의에 관한 논쟁'이란 뜻이다.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설전이 정치적 피바람으로 이어진 까닭은, 상복을 입는 기간이 '왕권의 의미'를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면 차남이라도 장남 대우를 해주는 것이 옳다, 아니다 둘째 아들은 둘째 아들일 뿐이다. 이것이 논쟁의 핵심이다. 집권당인 서인은 성리학의 원칙론을 들고 나왔다. 왕도 예절에 있어서는 일반 사대부와 다를 게 없다는 논리였다. 집권을 노리고 있던 남인은 왕권은 신권(臣權)과 달라야 한다는 현실론을 부각시켜 결국 왕의 마음을 얻어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조선의 이 논쟁은 2015년 가을 대한민국에 기묘한 양상으로 재연되고 있다. 11월3일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공식 발표했다. 집필진 거부 선언이나 시민사회와 대학가의 역풍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 관철을 선택한 셈이다.
국정교과서 지지론은 조선 예송논쟁의 남인의 주장을 닮았다. 정권이 역사의 내용과 관점을 주무를 수 있는 여지를 줌으로써, 그 정파적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 위에 서 있다. 이 주장은 분단현실이라는 국가의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 그간 일부 검정교과서가 이념문제나 북한 관련 사실에 대해 우려할만한 태도를 보여왔다는 여론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반대론은 서인의 주장을 닮았다. 역사는 정권보다 훨씬 크고 오래가는 개념이므로 권력이 그 제작과 표현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원칙론이다. 무엇보다 이 원칙론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이 숨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5ㆍ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고 유신독재로 현대사를 일정하게 왜곡시킨 책임의 당사자를 아버지로 둔 사람이, 어떻게 근현대사에 공정한 접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관점이다.
그간의 민간 교과서가 풍겨왔던, 우려할 만한 '좌파적 냄새'를 지우고 분단현실에 입각해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을 걸고, 정부가 돌격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는, 긴 안목에서 보면 중대한 역사적 퇴행일 수 있다. 다만 박대통령과 보수 일각의 관점들을 쟁취하는 '전리품' 때문에, 역사에 대한 보편적이고 유연하고 포용적인 시각을 도려내는 일은 민주주의와 인문학에 대한 야만에 가깝다. 역사엔 하나의 관점, 통일된 유일한 팩트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진리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체득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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