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대전) 정일웅 기자] ‘그리고 오늘이 천국임을 믿기로 했다(오유정 에세이 中)’ 깊어져 가는 가을,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천년의 시작은 한 편의 에세이집과 두 편의 시집으로 독자들과의 동행을 제안한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주어진 시간의 한 조각을 떼어내 독서 여행길에 발을 담그는 여유로움은 일상의 단조로움을 잊게 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 공간에 작은 쉼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천년의 시작은 말한다.

◆오유정의 에세이집 ‘소리를 삼킨 그림자처럼’
‘벚나무 아래 누워 보니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어떤 시인의 시구가 생각이 났다. 벚나무 아래 벚꽃의 꽃그늘에 누워 보고 싶지만, 아파트 단지 내에서 벚꽃 아래 눕는 것도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거실에 살짝 발을 들여놓은 귀한 손님인 벚꽃 앞에 앉아 꽃의 아름다운 향기와 대화할 수 있는 이곳, 우리 거실, 그리고 오늘이 천국임을 믿기로 했다. -<소리를 삼킨 그림자처럼>中


에세이집은 시인으로서,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저자가 마주하는 일상적 즐거움과 보람을 총 3부로 엮어 발간됐다.

1부 ‘아침’은 그녀의 일상생활 속 동네풍경, 집안 식물 식구들, 가족 등에 관한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주변 풍경을 품고 숨 쉬며 살아가는 개인의 시선을 담담하게 소개하고 2부 ‘가을 낮을 서성이다’는 사회인으로서 마주하는 삶을 가을이라는 계절적 특성에 빗대 시선을 옮기고 주변 공간과 사물 또는 인물 등으로 사유되는 풍경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또 마지막 3부 ‘계족산의 상춘’은 시인으로서 저자가 형성한 ‘자아’를 겉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연을 통해 시상을 떠올리고 문학기행을 떠나는 자신의 삶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둔산과 도솔산 등지의 산사체험을 전달한다.


◆양규원의 시집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순천만 습지에는 / 죽어도 아름다운 것들이 떼 지어 살고 있다 // 먼 곳을 오래 품어서 / 머리 조아려 바람의 길을 열어서 // 비로소 꽃이 피는 것, 아니 하얗게 새는 것 / 그런 갈꽃, 잠깐 내려보다가, 세 그루 연속 쪼아 대고 있다 // 찍는 소리보다 이후 떨림이 더 멀리 퍼져 가는 / 초저녁 동천에 구멍을 내고 있다 // 꽉 막혀도 텅 비어도 / 울림은 시원찮아, 땅끝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통은 // 까막딱따구리가 쾌속 연타로 쳐 대는 벼락 맞은 은사시나무 // 살자고, 아니 다시 태어나자고, 애벌레가 파먹은 나무 속 어둠 / 썩은 자리 찾아 타진(打診)하고 있다 // 일침에 일침, 상처에 상처, 온 머리가 흔들려도 // 너에게는 두통이 없다 // 겨울의 심장, 후회 없이 찍어 댈 줄 아는 까닭에’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전문


지난 2012년 <허공에 줄을 긋다>에 이어 발간된 양규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는 ‘상실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 내려간다. 작가가 말하는 ‘상실’은 첫아이의 볼에 난 화상(달빛 흉터 中)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재개발 직전의 오갈 데 없는 시간(하늘이 서 있다 中)이다.


문정희 시인은 이 시집을 빗대 “단단하고 조용하지만 결국 푸르고 날카로운 생명을 밀어 올리는 겨울의 심장처럼 양균원의 거처에는 꿈틀거리는 힘과 섬세한 언어의 밀도가 있다”고 말한다.


또 “진지하고 열정 넘치는 영문학자로서 현대 영미시의 첨단을 호흡하며 그의 정직한 내면은 현학 따위나 외래 문물의 겉껍질에 매몰되지 않고 늘 인간의 섬세한 감촉과 삶의 폐허, 모순의 힘을 응시한다”고 평한다.

◆최태랑의 시집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 농사를 천직처럼 짓고 살았던 아버지 / 겨울 기침은 언제나 봄까지 왔다 / 병원비 몇 푼이 아까워 가지 못하고 /파종기를 앞두고 눕고 말았다 / 봄비는 갈증이 지난 다음에 왔다 / 빗소리를 듣자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 지팡이 짚고 논둑길을 걸어 / 물꼬를 트고 돌아왔다 /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 듣고 간다더니 / 물소리가 가는 길을 내어 주었는지 / 오월 찔레꽃 피는 날 / 물 흐르듯 서쪽으로 가셨다 / 아버지는 그 먼 곳에서 / 논둑길을 같이 걸었던 아들에게 / 해마다 물고랑 소리 겨울나기 쌀을 보내온다’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 전문


이재무 시인이 바라보는 최태랑 시인은 ‘찔레순처럼 순한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 그의 시는 한결 같이 애틋하고 선하며 따듯하다.


이 시인은 “굴곡 심한 개인사를 드러낼 때도 최태랑 시인의 언어는 모가 나지 않는다”며 “전통 서정문법에 충실한 그의 시편들 속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내포된다”고 했다.


또 “그 다양한 사연들을 크게 말하지 않고 마치 연인과의 대화처럼 조근조근 들려줌으로써 시인은 남다른 시안으로 삶과 세계에 생명력을 준다”며 “천성적으로 시의 감성을 지닌 그의 시편을 접한 독자들은 기꺼이 그의 신자가 돼 줄 것”이라고 추천사를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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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계간 ‘시와 정신’으로 등단한 최태랑 시인은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라는 제목으로 최근 처녀시집을 발간했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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