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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칼럼]문재인에게 안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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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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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에서의 제러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 돌풍은 아웃사이더들이 일으키는 반란이라는 점에서 매우 놀랍지만 특히 기성 정치구도가 고착된 나라들에서 일어난 이변이라는 점에서 더욱 극적이다. 물론 지금 이들의 앞날에 대해서는 쉽게 낙관을 못하고 있다. 과연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후보로 최종 선출될 수 있을 것인지, 또 코빈이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총선에서도 승리해 총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것은 이들이 무엇보다 당내 기반이라든가 기성 정치권 내에서 확고한 세력으로부터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설령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두 사람이 일으킨 '사건'은 정치에 대해서 분명히 일깨워주는 바가 있다. 그것은 '과연 정치적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묵직하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는 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조자를 모으고 결속시키며 대오를 이룬다. 그 같은 연합과 단결은 무엇보다 정당이라는 결사체로 나타난다. 또 같은 정당 안에서도 분파라는 형태를 취하는데 그것이 정치적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세력이며 힘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역설이 생긴다. 당내 권력과 같은 현실적 세력을 확보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큰 세력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현실적 세력과 힘을 얻으려는 노력이 정치가 내세우는 공적인 가치나 목표가 아닌 권력 그 자체를 위한 경쟁으로 변질돼 버릴 때 그것은 당내의 권력자원보다 더 풍부하고 강력한 힘을 놓치는 결과를 빚는 것이다. 강력해지고자 함으로써 오히려 허약해지는 것이다.

지금 야당의 지리멸렬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당내에서의 이전투구와 문재인 대표의 고전도 거기서 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정치적 힘의 출처를 당내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찾으려 함으로써 스스로를 오히려 더욱 위축시키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특히 야당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큰 교훈 중 하나는 기득권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버리면 오히려 얻는가. 그것은 비단 정치에서만이 아니지만 정치가 그 같은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역설이 다른 어떤 부문보다도 강력히 작동하는 역동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적 결사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한 번 돌아가 보자. 정당에 대한 동양에서의 한 근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 송나라 구양수의 '붕당(朋黨)론'이었다. 유가가 붕당을 금기시했던 것과 달리 구양수는 이를 긍정했다. 배척해야 할 것은 붕당 자체가 아니라 소인배의 거짓 붕당(僞朋)일 뿐 오히려 이익이 아닌 도(道)와 의(義)를 추구하는 참된 붕당, 즉 진붕(眞朋)은 정치적 이상의 달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주자에 의해 계승돼 조선 시대 당쟁의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 이 붕당론은 상대 진영을 소인의 무리로 규정짓는 독선과 아집의 폐해를 낳았지만 그럼에도 정당이란 조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즉 정치에서의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 돼야 할지에 대한 한 전범(典範)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그가 속한 정당의 문제들에서 비롯된 면이 크지만 그 자신 또한 그 문제의 원인과 결과이기도 하다. 이 어려운 상황을 당내에서의 패권적 지위의 강화를 통해 헤쳐나가려는 것은 언뜻 현실적인 해결책인 듯하지만 실은 더 큰 것을 잃는 것이다.

그가 봐야 할 것은 '당내의 진붕 대 위붕'의 싸움이 아니다. 지금 야당의 어려움은 자신들로부터 이탈해 있으나 결집하고 싶은, 외면한 듯 보이나 지지를 보내고 싶은 당 밖의 지지세력들에서 '진붕'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세력이며 진짜 강력한 힘이다. 권력의 진정한 원천이다.

문재인에겐 지금 그 자신이 정치적 스승이나 선배로 삼고 있을 이들이 보여줬던 것처럼 작은 걸 버려 더 큰 것을 얻는 모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실은 모험이 아닌 다른 어떤 전략보다 '안전한' 길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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