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워런버핏 '알 왈리드', "불가능을 가능으로"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숨이 막혀왔다. 아버지가 시드머니(종잣돈)로 준 3만달러가 떨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방황했던 청소년기,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했던 미국 유학시절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갔다.
정신을 차렸다. 결국 아버지가 돈과 함께 준 컨테이너 사무실을 은행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사우디아메리칸은행(SAMBA)으로 달려갔다. 이 사무실을 담보로 맡기자 30만달러를 건네주었다.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때부터 철저하게 자금을 관리했다. 사업자금 외에는 단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그러자 기회가 왔다.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는 '블랙 골드(검은 황금ㆍ원유) 러시' 시대의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알라신이 내려주신 축복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유가 상승과 함께 토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그러자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이 리야드로 몰려왔다. 더구나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려면 현지 파트너와 대표자가 있어야 했다.
25세의 청년 알 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외국 투자자와 1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몇 건 성사시켰고, 커미션(수수료)으로 받은 수익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했다.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알 왈리드 킹덤홀딩스(KHC) 회장(60)은 포브스와 타임이 선정한 세계 4위 부호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이라고 했고, 포브스는 빌 게이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으로 평했다.
어떤 점 때문에 세계적인 언론매체들이 그를 이렇게 극찬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시티그룹, 펩시콜라, 애플, 트위터, 타임워너, 포시즌스호텔, 유로 디즈니의 최대 개인 주주라는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다.
알 왈리드 회장은 사우디의 왕자다. 하지만 여느 중동의 왕자와는 달리 입에 문 금수저를 일찍 놓아야 했다.
'검은 황금'의 특권을 누리지 않았다. 누릴 수 없는 처지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알 왈리드 회장은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초대 국왕의 21번째 아들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자와 레바논 초대 총리 리아드 엘 솔의 딸인 모나 엘 솔의 장남으로 1955년 태어났다.
혈통만 왕족일 뿐 실제 삶은 달랐다. 알 왈리드 회장의 아버지인 탈랄 왕자의 험난한 정치 이력이 그를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내몰았다.
그의 아버지는 왕의 분노를 사 이집트로 피신해 망명 생활을 했고 이후 이혼도 했다.
그는 어머니 편에 섰다. 왕족의 특혜를 누리지 못한 배경이다. 청소년기에는 가출과 퇴학을 반복했다.
결국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멘로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며 학업에 전념했다.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가 전 세계에 투자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됐다.
그는 건설과 부동산 투자로 돈을 모은 뒤 1985년 은행업에 뛰어들었다. 파산 직전이던 사우디연합상업은행(USCB)을 인수한 뒤 체질 개선작업을 통해 1989년 사우디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상업은행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사우디카이로은행(SCB)과 자신이 한때 창업자금을 빌렸던 SAMBA 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렇게 알 왈리드 회장은 버핏처럼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인수합병(M&A)을 통해 부를 일궈나갔다.
그의 투자 제국은 전 업종에 걸쳐 전 세계에 퍼져있다. 알 왈리드 회장이 95%의 지분을 가진 킹덤홀딩스의 투자 리스트는 세계 최대 기업으로만 구성됐다.
금융(시티그룹)과 호텔(포시즌스ㆍ페어몬트래플스ㆍ뫼벤픽ㆍ사보이)을 비롯, 언론(뉴스코퍼레이션ㆍ타임워너), 엔터테인먼트(유로 디즈니), 소매(사볼라ㆍ삭스ㆍ징둥닷컴ㆍ이베이), 정보기술(애플ㆍ트위터ㆍAOLㆍ모토로라), 부동산(카나리 워프ㆍ리야드 킹덤타워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2017년 완공 예정인 높이 1008m에 달하는 제다의 킹덤타워도 알 왈리드 회장의 소유다. 37년 만에 4칸짜리 컨테이너 사무실 대표에서 1㎞가 넘는 초고층 빌딩의 소유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재산은 정확하지 않다. 단지 언론과 알 왈리드 회장의 주장으로만 가늠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알 왈리드 회장의 자산을 289억달러(약 34조원)로 세계 25위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 왈리드 회장은 자신의 자산이 320억달러(약 37조원)라고 얘기한다.
그는 저서 '알 왈리드, 물은 100도씨에서 끓는다'에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당신의 열정을 다하라. 그러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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