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김일성 사망 10년전 퇴진 대비 했었다
외교비사 26만여쪽 공개…전두환 방일때 일왕에 과거사 입장표명 요구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1980년대 김일성 퇴진설에 대비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찰 정황, 일왕(日王)의 첫 과거사 유감 표명 과정 등의 비사(秘史)가 문서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 총 1597권 분량, 26만여쪽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선 1984년 김일성(1994년 7월 8일 사망) 퇴진설이 제기되자 북한 권력 승계에 대비해 마련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이다. 정부는 그해 5~6월 진행된 김일성의 소련ㆍ동유럽 순방이 사실상 '고별 방문' 성격이 짙다고 보고 김정일로의 조기 권력 이양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됐다.
1984년 6월23일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은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과장에게 '김일성이 머지않아 주석직에서 은퇴하고 김정일이 주석이 될 것'이라는 정보를 알렸다. 김일성의 직전 방문지였던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외무성 고위 관리가 현지의 일본대사관 고위직에게 말한 정보가 그 근거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김일성 생존 시와 사망 시 두 경우로 나눠 문화공보부 장관이 발표할 김정일 권력 승계와 관련한 대북 성명의 골자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는 대외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비정통성에 대해 '은밀한 홍보활동'을 편다는 내용을 대책에 포함했다. 서방뿐만 아니라 공산권 사회도 김정일의 권력 세습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1980년대 초 신군부의 탄압으로 도미(渡美)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당시 미국에 있던 외교관들은 김 전 대통령의 동향을 수시로 파악해 본국에 보고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뉴욕과 LA 총영사관에서 수집한 첩보는 주미대사와 국내 외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은 물론 안전기획부와 청와대까지 보고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에서 사실상 사찰한 것이다. 첩보 내용에는 김 전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교포 대상 강연 등의 활동이 포함됐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한일 간의 비화도 담겨 있었다. 1984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할 때 외무부는 전 전 대통령의 방일을 '무궁화 계획'으로 수립하고 일왕의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해 "방일의 대전제이며 한일관계 미래상 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일본이 방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도 일왕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수준의 과거사 언급을 할지 일본이 확인하지 않자 외무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국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비공식으로 조속히 발언 내용을 통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부령)'에 따라 일반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이번이 22회차로 총 2만여권, 270만여쪽에 달한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과 출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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