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독립운동가 ‘이수흥 선생’, 호국인물 ‘임병찬 의병장’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2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수흥 선생이, 호국인물에 임병찬 의병장이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30일 국내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인 이수흥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경기 이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이천 공립보통학교 수학 후, 한때 입산해 승려생활을 하다가 1923년 19세 때 만주로 망명해 통의부와 참의부에서 활동했다. 당시 참의부는 국내 진공작전을 활발히 전개했으나 1925년 일제의 기습 공격으로 고마령에서 막대한 병력 손실을 본 상태였다.
선생은 조선총독부 총독을 비롯한 고관들을 처단, 침체된 무장투쟁의 분위기를 되살리고자 1926년 5월 국내로 들어왔다. 참의부 제2중대 특무정사 자격으로 황해도 평산을 거쳐 경성에 잠입한 후 동소문파출소에서 일제 경찰과 교전을 벌이고 이천 현방경찰주재소와 백사면사무소를 공격했다. 일제 경찰은 선생의 신장이 5척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잡고 관내에 거주하는 키 작은 젊은이들을 조사했다. 선생은 3000여명이 동원된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투쟁을 이어나갔으나 반역자의 밀고로 체포된 후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고, 1929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또 전쟁기념관은 항일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순국한 임병찬(1851.2∼1916. 5) 의병장을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선생은 전라북도 옥구군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4월 태인의 무성서원을 근거로 대규모 의병을 일으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태인, 정읍, 순창, 곡성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다가 순창전투에서 일본군과 격전 중 그의 스승인 최익현과 함께 체포됐다. 서울로 압송되고 나서 2년형을 선고받고 쓰시마섬으로 유배됐다가 1907년에 귀국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선생은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의군부 전라남도 순무대장으로 임명돼 의병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 강화했다. 그러나 1914년 5월 동지인 김창식이 일본경찰에 체포되고 고문 끝에 독립의군부조직을 자백함에 따라 독립의군부의 국권회복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선생은 한일병합의 부당성을 알리고 국권반환 및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했다.
일본의 한국독립 보장만이 동양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하던 중 1914년 6월에 체포돼 거문도로 유배돼 1916년 5월 그곳에서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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