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살해' 분노의 저울질, 법조계 왜 경계할까
서초동 세모녀·안산 의붓딸 살인 참극…사나워진 여론, 강력처벌 요구 봇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박준용 기자]부모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자식을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라 사회적인 충격을 안겨주면서 이 같은 '비속(卑屬)살해'를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속살해도 존속살해처럼 엄벌해야 무고한 자녀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한 해 평균 30여건의 비속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2009년 30건, 2010년 34건, 2011년 34건, 2012년 39건 등 꾸준한 증가 추세다. 최근에도 안산 다세대주택 인질살해 사건, 서초동 세모녀 살해 사건 등이 사회적 파문을 낳았다.
안산 인질살해 사건 피의자 김상훈(46)씨는 아내 외도를 의심하면서 전 남편과 의붓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초동 세모녀 사건은 경제적 문제로 처지를 비관한 아버지 강모(48)씨가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성국 박사가 지난해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식살해 동기는 가정불화 44.3%, 경제문제 27%, 정신질환 23.9%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모 등을 살해하는 '존속(尊屬) 살해'와 달리 비속살해는 형법에 관련 규정이 없다.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처럼 존속살해는 가중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살해 사건은 가중처벌 규정이 없는 것은 물론 감형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질환 관련성이 있는 경우도 있고, 생존한 다른 자식 부양문제 등도 맞물려 있어 재판 과정에서 '정상참작' 되는 사례가 많다.
2012년 12월 서울고법은 재결합한 전처가 가출하자 자살을 결심하고 부모와 자식을 살해한 40대 임모씨에게 1심의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부모와 어린 아들까지 살해해 패륜적인 범행을 자행했지만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부모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항거불능 자녀의 목숨을 빼앗는 비속살해 범죄는 가중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안산 사건처럼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이 발생하면 "사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는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부모보다 어리고 미성숙한 자녀야말로 절대적 약자"라면서 비속살해는 존속살해보다 더 가중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비속살해는 물론 존속살해 가중처벌부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부모 공경을 중시하는 한국의 특성을 반영해 존속살해를 가중처벌하고 있지만, 가중처벌 규정 명문화 자체에 위헌요소가 있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속살해를 논하기 전에 존속살해 규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비속살해라는 이유로 강하게 처벌하기보다는 살인의 전반적인 상황과 동기를 참작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도 충분하다"면서 "일반 살인죄를 적용해도 안산 인질범은 극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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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양형 기준에 따르면 안산 사건의 경우 인질살해로서 '중대범죄 결합 살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 같은 범죄는 기본 형량이 20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이다. 가중처벌될 경우 징역 2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 이상의 형량을 선고할 수 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비속살해의 경우 동반자살이 많고, 부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살해한 사건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배우자가 선처를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가중처벌법을 계속 만드는 것만이 올바른 해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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