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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이석기·원세훈 들락날락…'대한민낯'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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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현·이재현·최태원 등 재벌가 비리 어두운 단면부터 억울함 호소 일반 민원인까지… 법의 심판대에서 한숨과 눈물

이석기 RO·댓글공작 재판 때는 진보·보수단체 첨예한 대립도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법원종합총사(서울고등법원ㆍ중앙지방법원)가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이곳은 우리 사회의 한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 갈등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이곳에서 표출된다. '2013 대법원 사법 연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일어난 민ㆍ형사 사건 넷 중 하나가 서초동을 통한다. 이곳에서 하루하루 한국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이들에게 올해는 어떻게 기억될까. 서초동 법원단지의 보안팀원과 법정경위들은 "법원에서 지켜본 2014년은 여느 해만큼, 아니 다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다"면서 "새해에는 법원과 검찰 앞이 좀 더 조용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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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 어두운 현실의 축도
박용성(59) 서울종합법원청사 보안1팀장은 30여년이 넘도록 법원을 지켰다. 그에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현재현(동양그룹 회장)과 이재현(CJ그룹 회장)이다 . 이들이 이곳에 왔을 때 서초동은 우리 사회 어두운 현실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현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사기성 기업어음(CP)'발행 의혹에 휩싸였다. 현 회장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거쳐 지난 1월 13일 계열사 전 대표 등과 함께 구속됐다. 현 회장이 동양 그룹이 주가를 조작하고, 사기성 CP를 발행했다는 수사결과가 나오자 피해자 4만여명은 분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이들은 1조3000여억원 상당의 손실을 봤다.

'동양사태' 피해자의 민사상 집단소송도 역시 서초동의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격렬히 분노를 표출했다. 박 팀장은 "법정에서 피해자들이 현 회장을 비난했고, 법원 삼거리에서도 시위를 했다"고 했다. 또 "한 피해자가 법정에서 녹음을 하다가 발각돼 재판장이 휴대폰에 있는 내용 다 삭제하는 것으로 하고 훈방조치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현 회장은 지난 10월 1심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피해자들은 잃은 돈의 손해배상을 두고 회사 측을 상대로 지난한 법정 싸움을 하고 있다.
이재현 CJ회장은 지난해부터 6200억여원의 비자금을 조성ㆍ운용하는 과정에서 2000억원대 탈세ㆍ횡령ㆍ배임 등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올해에는 1심과 2심 재판이 서초동서 열렸다. 이 회장은 서초동의 첫 번째 판단(1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 판단(2심)에서는 징역3년으로 감형받았다. 첫 번째 판결이 나올 때 이 회장은 두 눈을 감고 휠체어를 탄 채 판결을 들었다. 두 번째 판단을 받을 때 이 회장은 건강 상의 이유로 침대에 누워서 서초동에 나왔다.

이 외에도 그룹 총수들이 줄줄이 '서초동'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LIG, 조석래 효성 회장, 윤석금 전 웅진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은서초동에서 담담한 표정이었다. 법정에서 초조한 것은 방청석 쪽이었다. 이시우(27)실무관은 "그룹 총수 회장 재판 때 시민단체ㆍ기자 등 방청객이 예민해진다"고 말했다.
  
◆이념과 정치 갈등의 전장 되기도

올해 서초동은 어느 해보다 이념과 정치 갈등의 전장이 됐다. 하민영(26)ㆍ변상진(31)ㆍ채의석(26) 실무관 등은 하나같이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가 올해 서초동에 온 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기 전 의원은 지난해 9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조직원 130여명과 비밀회합에서 전쟁이 임박했다고 보고 국가 기간시설 타격 등을 모의한 혐의(내란음모 등)로 구속기소됐다. 수원지법에서 열린 1심은 이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내렸다. 반면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이민걸)는 내란음모 주요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19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하는 데에도 쓰였다. 이외에도 이 전 의원은 CNC 기업을 운영할 때 횡령관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서초동을 드나들었다.

이 전 의원의 재판이 있는 날이면 서초동에 보수단체와 진보당원이 함께 몰려왔다. 정치적 갈등은 이때 첨예하게 드러났다. 박 팀장은 "이 전 의원의 재판 때면 진보당원들이 많이 참석해서 시위를 하고, 법정이 비좁아 미리 방청권을 교부해야 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하 실무관은 "해외파병 경력이 있는 분들로 이뤄진 보수단체 회원들이 군복을 입고 이석기 전 의원 재판에 참여했는데, 방청객이 이를 보고 무섭다며 경찰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고 했다.

국정원 '댓글 공작' 재판 때도 서초동은 첨예한 갈등의 무대가 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댓글공작' 등 정치개입을 이끈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구속기소됐다. 서울 중앙지법은 지난해 7월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올 초 공소장 변경을 위한 준비기일을 포함 총 6차례 공판준비기일과 38차례의 공판기일을 열었다. 재판과정에서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도록 요청받은 적도, 지시한 바도 없다"고 버텼다. 그는 징역 2년 6월과 집행유예 4년ㆍ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채 실무관은 "원 전 국정원장 사건 때 가장 취재 경쟁이 치열했고, 원 전 국정원장을 비난하는 법정 소란도 있었다"고 전했다. 서초구청 국장, 서초 교육청 교육장, 국정원 직원 등이 관여한 '채동욱 혼외자 정보 유출 사건', 검찰과 국정원이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을 조작한 '국정원 증거 조작 사건'도 모두 서초동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 억울함 풀어주는 역할, 새해엔 더 잘하게 될까

사법부의 역할은 어떤 사회건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서초동 법원단지는 올 한 해 과연 그 같은 '해원(解寃)'의 공간이었을까. 그러나 적잖은 이들은 서초동에서 법의 정의와 현실 간의 괴리를 많이 느꼈던 듯하다. 법원 앞 삼거리에서는 '법의 잣대'에 수긍하지 못하는 이들이 하소연을 하는 모습이 끊이지 않았다.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높기만 한 '법'의 문턱 앞에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박 실무관은 "민원인들은 대부분 변호사가 없이 본인이 계속 소송을 하는데, 승소가능성이 낮을 때도 혼자 노력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고 했다. 박 실무관은 70대 할머니들이 패소해 민원을 제기하러 오는 것을 보면서 특히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변 실무관은 "범죄자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된 아들이 재판에 들어와서 방청을 하다가 갑자기 피고인에게 달려들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나로선 제지해야 했지만 한편으로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서초동에 오는 이들은 법조인이 아닌 경우에는 대개 긴장되고 위축된 모습이다"면서 "법률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홀로 서초동에 오는 것을 보면 특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새해에도 서초동 법원단지 주변은 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 그리고 갈등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서초동이 사회 갈등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는 곳이라는 믿음을 많이 주지 못하는 현실은 새해엔 얼마나 나아질까.

박 팀장은 "법원에 오는 분을 손님이라고 생각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친절 교육도 한다"고 했다. 법원종합청사의 보안팀과 민원실은 난민신청을 하러온 외국인에게는 통역을 해주고, 재판을 받으러 온 장애인에게는 택시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법조의 문턱을 낮추자는 취지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서초동 법조단지에 더욱 더 바라는 것은 친절보다는 법의 공정성일 것이다. 새해에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든, 그런 이들을 지켜보게 되든 간에 많은 시민들은 '편한' 서초동보다도 '평등하고' '공정하며' '억울함을 풀어주는' 서초동을 더욱 고대하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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