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다시 힘내라. 슈퍼맨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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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지금 우리 사회에 비춰진 아버지 모습은 어떤가 ? 2015년 청양의 해, 워커홀릭에 빠졌던 아버지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자신과 가족을 돌아 보며 지위를 회복하게 될까. 작년 한해 수많은 '슈퍼맨'들이 배낭을 메고 어린 자녀와 캠핑을 떠나며 '아버지 되찾기'에 고군분투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가족의 결속이 더욱 중요시되면서 위기의 아버지들이 속속 서둘러 가정으로 귀환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들, 딸들도 '아빠, 어디가 ?'라며 돌아온 '슈퍼맨'들과의 추억 쌓기에 여념 없었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 작년 12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딸을 대신해 '아버지'로서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조회장은 새해 들어서도 그룹 시무식에서 또다시 직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딸 대신 세상의 화살을 맨 몸으로 맞서며 눈물을 훔쳤다. 이에 국민들은 딸의 실수가 '아버지' 라는 부권(父權)의 책임을 넘어 그룹 위기, 대한민국 경제의 신뢰 위기로 이어지는 걸 지켜봤다.

그에 앞서 작년 5월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당시 SNS에 올린 고승덕 교육감 후보자 딸의 글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2인칭, 3인칭으로 부르며 극심한 증오심을 보였다. SNS 속 그녀의 얼굴은 분노에 찬 표정으로 비정한 '부정(父情)'을 고발했다. "아버지의 교육감 출마는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며 피붙이를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 교육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 어느 귀절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딸이 아버지를 부정한다 ?"


한진그룹 총수 조양호, 천재 변호사 고승덕.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이들의 사례는 아버지라는 자격이 어디까지 책임과 의무를 감당해야하는 것인지를 다시금 반문케 한다. '아버지', 이는 권위의 상징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엄숙함과 존경, 질서를 갖게 해주는 이름이다. 적어도 가족에게 불행이 닥쳐도 이겨내야 하고, 식구를 부양하고 지켜야 하는 존재다.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녀로부터 부정 당하고, 딸의 잘못을 참회하며 고개 숙인 '슈퍼맨'들로 '아버지'의 위기를 더욱 실감한다.

그런 까닭에 부권의 상실과 몰락을 방어하기 위한 사회적 기제도 다른 때보다 더 많이 작동한다. 문화콘텐츠들이 그렇다. 재작년 영화 '7번방의 선물' 이후 수많은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문학, 연극, 뮤지컬 등이 부성애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최근 주말 방송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화 '국제시장',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등도 부계사회의 몰락, 부성애에 대한 소비심리에서 비롯된 영상물이다. 그만큼 부성애와 부권에 대한 소비 욕구가 절박하고 많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곽영진 영화평론가는 "아버지가 없는 시대가 더욱 아버지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을 반영한다"며 "이런 문화콘텐츠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부권의 상실, 가부장적 사회의 몰락을 방어하는 기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성장중독증과 경제 위기 = 아버지의 위기는 우리 사회 '성장중독증'과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다. 2013년 OECD 조사 결과 대한민국 가장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총 2380시간이다. OECD 주요 22개국 연 평균시간은 1701시간으로 우리보다 679시간이 적다. 가장 적게 일하는 네덜란드의 1068시간과 비교하면 두배 가까이 된다. 그만큼 가족과 유리돼 있는 셈이다.


대개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잘 먹고, 입혀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신에 대해서는 행복 유예에 빠져 있다. 그렇게 워커홀릭으로 사는 동안 아버지들은 돈 없고, 병들고, 내몰려 가족을 지킬 힘을 잃어가고 있다. 그 적나라한 현실이 베이비부머인 아버지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현재 베이비부머의 평균 은퇴 연령인 53세(남성 55세·여성 51세)다. 그러나 재취업할 일자리는 극히 부족하다. 직장에서 밀려난 베이비부머는 나이에 따른 사회적 차별, 구체적 직업능력의 미비, 체면 중시 등으로 재취업이 사실상 막혀 있다.


또한 늙고 지쳐간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위암의 경우 10만명당 발병률이 40대는 42.4명이며 50대의 경우 100.8명이다. 다른 암의 발병률 역시 2∼4배 가량 높다. 통계청 조사결과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들의 황혼이혼 비율은 1990년 5.2%에서 2011년 24.8%로 5배나 높아졌다. 노후 대비는 더 참담하다. 베이비부머의 80%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 40대도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부계사회 '대한민국'에서 아버지의 위기는 한 가정의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이에 전문가들은 "아버지를 회복하기 위한 국가, 사회적 프로그램과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 아버지들의 쓸쓸한 자화상 = 아버지들도 아버지의 위기를 잘 안다. 아버지들은 간혹 술자리에서 자조섞인 농담을 늘어놓곤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치워야할 것은 ?" "아버지." "집에서의 위치는 ?" "엄마, 큰 아들, 작은 딸, 강아지, 아빠." 이렇게 신세 한탄하며 노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중추인 4050세대들의 일상화된 풍경이다.


이런 판국에 수많은 아버지들이 서둘러 '아버지 되찾기'에 나서야 할지, 이대로 주저앉아야할 지 기로에서 서성이고 있다. 평범한 가장이자 공기업 중견간부인 박종식씨(48)의 고백은 일중독자 아빠의 비애가 그대로 묻어 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집안에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요. 또 방안으로 들어가면 늘 방문을 잠그죠. 아빠와는 말을 나누고 싶지 않다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여요.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도 방안에만 숨어 있어요. 한번은 식탁에서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 받는 딸의 스마트폰을 빼았었다가 기절할 뻔 했어요. 딸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서 '나쁜 놈' 하며 거칠게 쌍욕을 하고 주먹질 해댔어요. 화가 치밀어 나도 고함을 치며 심하게 다퉜죠. 그 이후로 대화가 완전히 단절됐어요.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해 나갈 지 방법도 모르겠어요."


증권사 간부인 김영상씨(53)도 "가족들이 밥상에 모두 둘러 앉아 밥 한끼 먹기가 쉽지 않다. 곧 대학을 졸업하는 딸은 취업준비하느라 바쁘고, 이제 군대를 다녀온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얼굴 마주하기도 어렵다"며 "집안에서도 각자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빠져 지내느라 대화는 완전히 끊겼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생활하다 보면 우리는 한 울타리에 사는 4인가구 같다"고 탄식했다.


이런 박씨, 김씨와는 달리 고등학교 선생인 이주명씨(52)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아버지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씨는 몇개월전부터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천하는 중이다. 버킷리스트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 함께 해야 할 항목 50가지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아이들이 먹든 안 먹든 요리를 해주고, 자녀들이 좋아하는 화법과 노래를 익히고, 간혹 응원 문자도 보내주고 자주 손편지를 썼다.


"네가 내 딸이라서 힘들었겠구나. 그저 아빠는 남들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다. 늘상 피곤하다는 생각에 너희들을 외면해 미안하다. 너는 항상 나의 소중한 딸이다. 사랑한다."


이씨는 "편지를 쓰는 등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다 보니 비로소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며 "그동안 아이들과 마음을 터놓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두드리고 '말문 트기'를 시도한 지 일주일 지날 무렵 딸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아빠 미안해요. 힘 내세요. 그리고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오세요." 서서히 아이들과의 화해가 시작된 것이다. 이씨는 장성한 아이들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는 게 가장 큰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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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권의 회복은 =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있든,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애쓰든 아버지의 고독감은 깊다. 소위 '100세 시대'가 왔다고 모두들 축복을 운위할 때 여전히 남은 날들이 걱정하고, 살아내야 할 의무와 책임도 내려놓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서다. 정년은 다가오고, 미래 설계는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낼 지......아버지들은 지금 새롭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개발하고, 세상과 맞설 무기를 벼르고, 외로움과 맞설 정신의 거처를 마련하기에도 버거워졌다. 그렇다고 무너지고 싶어도 무너질 수 없는 처지다. 언제부턴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구분하는 세상 인심도 어깨를 무겁게 한다.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는 "부권을 회복하기 위해 가정안에서 모성과의 연대, 지원, 협력을 청하고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을 잠시 내려놓은 다음 스스로 행복해지는, 구체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며 "가장 적극적인 해결책은 가족 내 소통"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아버지도 매일 무너지고 매일 일어서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아버지들은 오랫동안 저녁이 없는 삶과 가족에게서 버려진 삶으로 고통받았다고 가족에게 말하라"고 권고한다. 그래서 가족들이 아버지의 처지를 인정하게 하면 대화는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부권 회복을 위해서는 아들·딸과의 연대, 사회제도적 대안 마련 등 여러 해결책이 요구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 자신의 몫이다. 이것조차 짊어져야 하니까 '아버지'다. "결코 포기하지 말고 다시 힘내자."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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