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유통속도 2분기보다 더뎌져 0.73…돈 실물경기로 안 흘러들어
전문가들 "아베노믹스의 세번째 화살 같은 미시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돈의 물꼬를 터줬는데도 자금이 실물경제까지 흘러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싱크탱크' 격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실물경기를 더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한다며 한은을 압박하고 나섰다. 반면 통화·재정 정책은 한계가 있으니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구조개혁)'과 같은 미시적인 정책으로 경기불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도 만만찮다.
5일 한은에 따르면 올 3분기 통화유통속도(평잔ㆍ계절조정계열 기준)는 0.73을 기록, 지난 2분기(0.74)보다 낮아졌다. 3분기 중인 8월에는 기준금리를 2.5%에서 2.25%로 내리는 조치가 단행됐고, 최경환 경제팀이 부동산활성화 지원책을 내놨다. 두 경제수장의 '정책공조'가 약발을 받지 못한 셈이다.
첫 번째는 분모인 통화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시중유동성이 실물경제에 비해 과도하다 보니 화폐유통속도도 빨라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발표한 '주요 통화관련 지표 동향 및 평가' 보고서에서 "금융자산과 부채가 같이 늘어나 분모인 M2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통화유통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해외 주요국처럼 금융산업이 성장하면서 실물경제에 비해 민간의 금융자산 보유규모도 확대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결과적으론 통화유통속도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자인 명목 GDP가 실물경제에 비해 작아서다. 돈은 충분한데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이것이 실질적인 생산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고령화와 경기침체로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통화유통속도도 더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진호 한국은행 금융시장부장은 "시중유동성은 풍부한데 그 돈이 실물경기로 이어지는 '고리'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통화유통속도도 낮아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은의 금리 고민 '부채 폭증 vs 투자 부진'= 추가 금리 인하로 경기불황 문제에 맞서기엔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아 한은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기업 투자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가계부채는 폭등하고 있어서다. 9월 말 현재 가계신용은 1060조3000억원으로 6분기째 사상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11월 제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5로 기준선인(100)을 한참 밑돌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금리를 인하했을 때, 가계부채는 하나도 안 늘고 기업 투자만 늘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통화나 재정정책과 같은 거시정책보다는 미시적인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소득환류세제나 임금인상 정책, 기업규제 완화 등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 당시 내놨다 유야무야된 미시경제정책을 더 크게 펼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유럽을 비롯해 일본까지 돈을 엄청나게 풀어도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격인 규제완화와 같은 미시경제정책으로 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대형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지금은 특정정책을 가리기보다 거시정책과 미시정책 모두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경기의 구조적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선 내년에도 정책공조를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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