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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이용복과 할미꽃 코드(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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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사랑이 있으면 마음은 공주요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마음은 집시라
끝없이 방황하는 이 마음에
주어요 참된 사랑
뜨겁게 타오르는 눈동자에 사랑을 보여주어요
이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에
오 그대 사랑 가득히 채운 이 행복
당신과 함께 영원토록 나누어
진정코 변하지 않으리라
이 참된 사랑 사랑 이 참된 사랑

내 마음에 그대가 없으면 마음은 나그네
끝없는 세월의 방랑길 한없는 나그네
거칠은 세상이라 외로워요
오세요 내 마음에
텅 비어 쓸쓸한 이 가슴에 사랑을 안겨주어요
이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에
오 그대 사랑 가득히 채운 이 행복
당신과 함께 영원토록 나누어
진정코 변하지 않으리라
이 참된 사랑 사랑 이 참된 사랑
마음은 집시 / 이용복


내가 이 노래의 진수를 깨닫게 된 건 이용복이 아니라 형님의 가창을 통해서였다. 형님은 나를 데리고 외가로 가거나 혹은 천렵을 나설 때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치 시를 읊는 듯, 혹은 연극의 독백인 듯, 애절하게 호소하는, 쓸쓸하고 낮은 목소리가 살며시 마음 자락을 붙들다가 마침내 빠르게 터져나오는 힘찬 환희의 송가. 형님의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길을 걷는지도 잊어버렸다. 이용복의 사랑론은 단순하다. 사랑이 있으면 마음이 공주가 되고 없으면 집시가 된다. 공주는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이지만, 집시는 혼자서 떠도는 사람이다. 사랑의 반댓말이 이별이거나 눈물인 사람은 이용복 앞에선 사치스런 푸념이다. 그에겐 사랑의 저쪽에는 '고독'과 '방황'이 있을 뿐이다. 사랑의 상태는 저 근원적인 고독감에서 따뜻하게 위로받는 바로 그 소박한 지점에서 완성된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한번의 키스면 다 해결된다. 이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에. 그게 그의 참된 사랑법이다. 이 사랑법을 뒤집으면 그의 생은 저 기초적인 문제가 더 절실할 만큼, 쓸쓸하고 힘겨웠다는 고백이 나온다.
1972년 이용복은 양희은의 데뷔앨범인 '아침이슬'의 제작에 참여한다. 슬슬 인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때였다. 방송사의 '장애인 해금(解禁)'도 그의 활약이 이뤄낸 개가였다. 1972년과 1973년 그는 MBC에서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받는다. 이때 그가 불렀던 노래는 '사랑의 모닥불'(이 노래는 내가 시골의 음치 친구녀석에게, 적어도 낭만을 가진 인간에게는 18번이 필요하다는 충고를 하면서 가르쳐줬던 곡이다) '어린 시절' '순이 생각' 등이다. 1974년에는 그의 히트곡과 일대기를 버무려 또다른 영화가 제작되었다. (감독 조문진) 2년새 한 가수의 일대기가 두번씩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리라. 이렇게 그가 주목을 받은 건, 그라는 존재의 특이성과 함께 불굴의 성공신화 때문일 것이다. 1973년은 이용복에게 또다른 의미에서 기적이 일어난 해였다. 그에게 김연희가 다가왔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사람까지 사랑해버린 여인. 꽃잎처럼 향기로운 입술을 포개는, 바로 그 순결한 사랑을 꿈꾼 그녀와, 이용복은 7년의 연애 끝에 1980년 결혼을 한다.(두 사람은 쌍둥이 아들을 가졌다. 주원. 효원이. 올해 16살이 되었다.)

하늘을 달리는 황금마차처럼 거침없던 1975년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해 가요정화운동이란 것이 진행됐는데, 이때 장애인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이 불거졌다는 증언들이 있다. 장애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왜 갑자기 '정화'의 와중에서 불거졌을까. 장애인에 대해선 더 관대해지는 것이 사회의 성숙도일텐데, 어떻게 이런 시각이 '불거'졌을까. 이 대목에 대해선 당시 유비(유언비어) 통신을 인용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한 고위층이, 앞 못 보는 사람이 왜 TV에 나오나,라고 말하자 그 뒤 이용복에 대한 방송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이 소문의 진위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용복은 1978년 마지막 앨범 '아낙'을 낸 뒤 가요계에서 사라졌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무렵 매니저를 구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었어요. 금전같은 복잡한 문제들이죠. 무엇보다 무대 체질은 아닌 것 같았어요. 뒤에서 음악작업하는 것이 좋더군요." 과연 그랬을까. 그렇다면 1972년과 73년의 그 무대체질은 무엇이었던가. 들을 수록 아리송하다. 누군가의 외압에 의해 그가 불이익을 당했다면 이 사건은 그에게 사회적인 실명(失明)이라 할 만하다. 그는 그뒤 밤무대를 전전했다.
1985년 그에게는 또다른 계기가 찾아왔다. 미국의 장로교 연합회에서 초청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7년간 미국에서 복음성가를 공부한다. 이용복이 사라진 기간에 한국맹인복지협회에서는 보사부에 이용복 활동 재개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그가 돌아온 건 91년 여름이었다. 서울 답십리에 '강남 녹음실'을 차린다. 2000년에는 용문사 입구로 옮긴다. 이때는 녹음실 옆에 모텔도 운영한다. 이듬해 그는 녹음 사업은 접고, 양평으로 가서 비행기를 고쳐 만든 '공항'이란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재작년에는 25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타이틀은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작년에도 이용복 뉴스는 계속 됐다. 그는 30년 만에 개인 콘서트를 가졌다. 올해 나이 쉰 네살. 아직도 여전히 펄펄 끓는 그의 내부의 음악체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용복의 노래를 따라할 수는 있지만 흉내낼 수는 없다. 그러려면 이용복의 저 원초적 절망과 좌절과 억압과 분노와 그것을 다 받아들인 관용까지를 모두 겪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고통이 단련시킨 순정한 떨림음이다.

다정한 내 친구 어여쁜 순아는
어느날 날 두고 혼자서 떠났다네
순아의 손 때묻은 조약돌 보면
지금도 들리는 작은 발자욱 소리
봄이 오면 뒷동산 위에 할미꽃이 돋아나는데
내곁을 떠나간 가엾은 순아는
할미꽃 보고파 어떻게 사나

순아야 / 이용복


나는 차를 몰면서 이 노래를 듣다가 눈 가에 괴는 액체를 느꼈다. 이 단순한 노래가 왜 그랬을까. '할미꽃 보고파 어떻게 사나'라는 귀절 때문이었다. 이쁜 꽃, 향기 좋은 꽃, 큼직하고 돋보이는 꽃도 많은데 하필 할미꽃인가. 작은 발자욱 소리를 지닌 소녀와 양지 바른 봄날 나란히 앉아서 지켜보던 그 기억을, 이용복을 모르는 후배는 상상해낼 수 있을까. 무덤가에 고개 숙인 채 피어있는 가녀린 꽃을 바라보는 애잔한 눈시울이 노래 하나에 그대로 살아나는데 말이다. 말하자면 저 '할미꽃 코드'가 버퍼링 되지 않는 세대, 그게 이용복을 모르는 세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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