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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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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허위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했던 김수영 시인은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인 자신을 이렇게 비웃는다.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시인은 그렇게 왜소한 자신을 '모래만큼 작고 먼지보다 하찮은 인간'이라고 자조한다.

중요한 것을 외면하면서 작고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행태는 히틀러의 이른바 '큰 거짓말'론, 즉 큰 거짓말일수록 사람들은 더 잘 속아 넘어간다는 선전술, 그런 선전술로 증식하는 파시즘의 토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 같은 '이중성'에는 허위의식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측면도 있다. 즉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는 피하는 대신 그에 대한 자책 혹은 반발로 자신이 상대할 만한 문제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종의 자기방어 내지 자기합리화 기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김수영이 조롱했던 소시민의 비겁함을 좀 더 관대한 시선으로, 이를테면 자기 속의 '옹졸한 소시민'과 '양식 있는 시민' 간의 타협과 절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경계할 것은 그같은 타협과 절충이 지나쳐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경중의 전도가 지나치지 않도록 사회가 균형추와 제어장치를 갖추고 있느냐가 그 사회의 지성이며 문제인식 및 해결의 역량일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상급식 및 교육복지 논쟁은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다. 보편적 복지라든가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쟁은 분명히 매우 필요하다. 예산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그렇게 예산의 씀씀이에 대해 들이대는 엄격한 잣대를 더 큰 돈의 지출에 대해서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허망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업에 수십조원이 탕진됐던 것이나 현재까지 드러난 의혹들로는 블랙코미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자원 개발사업에 대해서도 무상급식에 대해서와 같이 매섭게 추궁하는 식이라야 우리는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지 않는 건전한 시민이 되지 않겠는가.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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