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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론티어]한 손엔 시집, 한 손엔 밀베이스…'반전' 꿈꾸는 여성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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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애 씨앤에이인더스트리 대표

[W프론티어]한 손엔 시집, 한 손엔 밀베이스…'반전' 꿈꾸는 여성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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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창업한 부품소재 회사, 남편은 기술 아내는 외부영업
"나는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 생각 여성들이 가져야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저, 문학박사 학위 보유한 여자에요. 부품소재 기업과 시인, 안 어울릴 듯 잘 어울리지 않나요?"

낮에는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시문학을 가르치고, 밤에는 국경을 넘나들며 신소재 개발에 몰두하는 CEO. 배영애 씨앤에이인더스트리 대표에게는 요즘 흔히 말하는 '반전 매력'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릴 법했다. 27일 양재동 사옥을 찾은 기자에게 배 대표는 씨앤에이인더스트리의 주력상품인 '밀베이스'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LCD의 꽃, 밀베이스에 눈돌리다 = 밀베이스는 LCD 등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로, 빛을 쬐어 LCD의 색상을 구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 액정으로 사진을 내려받아 선명한 색상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이 밀베이스 덕택이다. 일본이 세계 밀베이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배 대표는 14년 전 회사를 설립해 밀베이스의 국산화를 추진해 왔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TV나 핸드폰, 내비게이션, 태블릿 PC등 모든 액정의 색상을 구현하는 게 밀베이스의 역할이에요. 빛의 3원색인 빨강, 녹색, 청색 안료를 깔고 뒤에서 전기적으로 빛을 쏘면 색이 혼합되면서 모든 자연의 색을 발현하게 되는 거에요. 휴대폰의 많은 부품들이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지만 그 존재를 모르는 대표적인 소재죠."

화학에 문외한인 기자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배 대표를 보며, 영락없는 이과 전공이려니 했다. 하지만 배 대표가 스스로 밝힌 그의 전공은 이과가 아닌 문과였다. 그것도 세속과 가장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시문학 전공에, 박사학위까지 보유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배 대표는 "중소기업계에서 나처럼 상반된 이력을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라며 창업하게 된 계기를 풀어놓았다. 처음에는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는 단계부터 시작했다. 배 대표의 남편은 봉우코퍼레이션이라는 부품소재 유통회사를 설립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7년간 영업을 해 왔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밖에 몰랐던 배 대표는 어느새 남편의 일에 대해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이 27년간 부품소재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옆에서 보고 들은 게 많았어요. 일본에 함께 출장을 가서 산업현장을 보고 오기도 했고요. 어깨너머로 배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저도 안목이 생겼어요.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14년 전, 휴대폰 산업이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산업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선은 남편과 손잡고 각자대표 체제로 씨앤에이인더스트리를 설립했어요."

◆여성이 영업하니 더 잘 되네 = 하지만 설립 후 7년간은 아예 수입이 없었다. 그동안 남편의 회사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배 대표가 교단에 서서 벌어들인 각종 담보물을 그야말로 '올인' 했지만, 정작 수입이 없었던 것이다. 고민고민하던 부부는 색다른 결단을 내렸다. 남편은 바깥일을, 아내는 회사 내 일을 맡았던 기존의 역할 분담을 과감하게 변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생각을 전환하기로 했어요. 남편을 연구와 R&D 담당으로 돌리고, 제가 직접 영업에 나서 대만으로 날아갔어요. 대만과 중국이 전통적으로 여성 파워가 세잖아요. 여성 기업인들을 한국보다 더욱 인정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인지 둘의 역할을 바꾸고 나서 6개월만에 오더를 받아냈어요. 7년 동안 매출이 없다가 8년차가 되어서야 첫 매출이 발생한 셈이죠. 제가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맺은 해외 바이어와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당시 첫 매출을 올린 대만의 협력사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배 대표는 '이번 건이 터지면 향후 씨앤에이인더스트리가 몇 년간 먹고 살 먹거리가 생길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밀베이스 부문에서 유명한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외국, 그 중에서도 일본 기업들이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밀베이스를 국산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순수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업체와의 합작법인이 적지 않다. 배 대표는 순수 국내 기술로 밀베이스를 생산하는 여성기업이라는 점에 자부심이 높다. 설비투자에 수억씩 들여가며 그가 밀베이스 국산화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부품 소재부분에서 일본에 많이 뒤쳐져 있어요. 겉으로는 우리가 일본을 앞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많은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서 가져다 쓰고 있어요. 장비나 기계 국산화에 비하면 부품소재 국산화는 굉장히 비중이 작은 편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개발하는 제품 모두가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들기 쉬운 소비재를 팔아서 당장 푼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부품소재 국산화를 통해 일종의 애국을 하는 것이라고 언제나 저 자신에게 되뇌어요. 해외에 나가서 자랑스럽게 우리 제품의 우수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죠."

◆여성이기에 힘들고, 여성이기에 힘이 난다 = 소재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정작 씨앤에이인더스트리는 동우코퍼레이션과 거래관계가 있는 1개 업체에만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제품을 판매하려면 제품력보다는 영업과 접대 등 제품 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여성 CEO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국내에서 먼저 매출이 일어나고 해외로 진출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씨앤에이인더스트리는 해외서 먼저 알아봐 줬어요. 국내에선 '여성 CEO가 운영하는 기업이 뻔하다. 하다가 힘들면 못 하겠다고 자빠질 것이다'라며 무시하기 바빴죠. 가부장적인 문화로 유명한 일본계 기업들도 여성 CEO라고 무시하진 않았는데…"

그는 대만 업체를 공략할 때 오히려 여성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워 성공적으로 수주를 따냈다. 작은 기업이기 때문에(small) 빠르고(speed) 기술력이 강하며(strong), 여성 CEO이기 때문에 정직하다(honest)는, 이른바 배 대표의 '3S 1H' 론이다.

"여성이 대체적으로 남성보다 거짓말을 덜 해요. 그래서 그 정직성을 내세웠죠. 대만 기업 관계자들 앞에서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정직하고, 회사는 작지만 그래서 서비스를 빠르게 해 줄 수 있다. 대기업은 결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는 가격결정도 빠르고 선적시간도 맞춰줄 수 있다. R&D에 과감하게 투자해 기술력이 강하다'라고 이야기했죠. 교사 시절에도 제 강의에 흡입력이 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거든요. 유창한 영어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먹혔죠."

그는 요새 여성 후배를 키우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30명 남짓한 임직원 중 7명이 여성일 정도로 의식적으로 여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배 대표는 "나와 함께 일하려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여직원을 뽑으려고 하는데 많지가 않다"며 "특히 경력자가 아닌 경우 책임감도 없고 직업관도 투철하지 않은 데다, 너무 돈 밖에 모른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는 '돈은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오는 것'이라며, 청년들이 돈을 보고 직업을 선택해선 안 된다고 일침을 날렸다.

"여성 직원들이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는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여성으로서의 충고에요. 보면 들어올 때부터 짧게 일하고 힘들면 나가겠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여직원들이 적지 않아요."

요즘 증가하는 여성 창업자에게는 창업 선배로서 진지한 충고를 해 주기도 했다. 직원들 월급 줄 돈 걱정에 골방에서 울어본,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배 대표로서는 요즘 창업자들이 너무 가볍게 창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 개발보다는 당장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에 집중하는 창업자들이 많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도나도 그쪽으로 몰리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형이나 옷 같은 것 말이에요. 처음에는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연매출 수십억원 규모의 회사를 키울 수가 없어요. 그런 것보다는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이 뭔가, 여성 기업인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1인 창업을 반대해요. 정부 돈만 축내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봅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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