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순신 장군을 위인 전기 속 타고난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부터 대장 역할을 도맡아 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23전23승이라는 전공을 올린 천부적 해군 장군으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타고난 영웅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합격했고 그 성적 또한 우수한 것은 아니어서 종9품의 미관말직으로 무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마저도 순탄치 않아 파직과 백의종군을 경험하며 낮은 직급을 전전했다. 전라 좌수사 부임 전까지 그는 야전 경험은 주로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수비하는 전형적인 육지전 중심이었으니 노련한 해전 전문가도 아니었던 셈이다.
여기서 문득 의구심을 가져본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 시대는 과연 그를 영웅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지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인간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최고결정권자의 지시에 맞서 본인의 소신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가능한가. 파직과 백의종군이라는 오점이 있는 인사도 요직에 재기용 될 수 있는가. 단기 업적주의가 만연한 조직 사회에서 전쟁 준비 같은 장기 전략이 수용될 수 있는가. 이순신이 그랬던 것처럼 능력 중심의 파격승진이 용납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무릇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이다. 과거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이 있었다면 현재는 사회 각 분야의 수많은 영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영웅 탄생에 적합하지 않다면 막연한 기다림보다 시스템 개선에 전력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내부 기강은 철저히 바로 세우되 인사ㆍ조직ㆍ의사소통은 더욱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단기적 임시 대응보다는 장기적 관점의 발전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권은 이러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각종 사고와 분란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이며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144개국 중 80위에 그치고 있다. 한 은행의 수장을 맡고 있는 나부터 반성할 문제이며 근본적 변화를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부디 각계각층의 고민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은 아닐지라도 사회 곳곳의 작은 영웅들이 속속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주하 NH농협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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