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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55 포토갤러리]저 핏기없는 얼굴 기억하는 게 우리 의무다

최종수정 2014.09.24 17:09 기사입력 2014.09.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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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의 흔적- 나라 없어 당한 '소녀'들, 지금도 '소녀'를 위한 나라는 없다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기획시리즈 '위안부 보고서 55'의 온라인 포토갤러리 첫 번째 카테고리인 '역사의 흔적'은 당시 위안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위안소로 강제 동원된 앳된 소녀들과 이곳을 이용하는 일본군, 성병검진을 맡은 군의관 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위안부 관련 기록문헌에 실려 있는 흑백사진들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일본군 패전 후 연합군의 보호를 받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안심하긴 일렀고, 무사히 돌아갔다고 해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는 막막함 때문일까. 밝은 얼굴의 군인들과는 달리 소녀들은 고개를 숙인 채 불안하고 침울한 표정이다. 특히 사진 속 임신한 여성은 북한의 고(故) 박영심 할머니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뱃속의 아이는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해방 후에도 7개월간 중국의 포로수용소에 머물다가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역사의 흔적'에서는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일본군 위안소로 알려진 중국 상하이 위안소의 외관도 볼 수 있다. 당시 상하이 파견군 참모부장인 오카무라 야스지가 나가사키현 지사에 처음으로 위안부 차출을 제안했다고 한다. 일본군의 민간인 강간 사건을 막고, 성병을 예방한다는 명목이었다. 1932년 세워진 상하이 위안소 정문에는 '성전의 승리를 위해 용사를 환영합니다. 신심을 다해 봉사하는 일본 여성의 서비스'라는 글이 써있다.


위안부들의 성병검진을 맡았던 일본 군의관과 간호사의 모습도 있다. 당시 군의관은 위안부들에게 강력한 성병치료제인 살바르산(일명 606호 주사)을 투약하거나 수은으로 치료를 했다. 향후 피해자들이 각종 부작용과 불임에 시달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군 대여섯 명이 위안소 밖까지 길게 줄을 서있는 장면도 사진으로 남았다. 이들은 위안부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며 긴 칼로 위협했다고 한다. 위안부들은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는 강제 성노예 제도 하에 있었던 것이다. 위안소는 대부분 학교, 여관, 체육관 같은 민간 건물을 임시로 개조한 형태였다. 내부는 칸막이로 나뉜 작은 방이 여러 개 있었다. 방에는 요가 깔려있고, 씻을 수 있는 대야 하나가 전부였다. 위안소 내부를 재현해놓은 경기 광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의 전시실을 찍은 사진에선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소녀들의 공포와 절망감이 어땠을지 짐작케 한다.

▶'위안부 보고서 55' 포토갤러리 :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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