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 올 초 금융권을 뜨겁게 달궜던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주범 서정기 중앙티앤씨 대표에 법원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1조8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피해액과 수년간 복잡한 금융기법을 동반한 사기행각에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것. 하지만 또 다른 주범인 전주엽 엔에스쏘울 대표가 여전히 해외 도피 중으로, 그를 제외한 나머지 연루자들만이 법정에 섰다. 사실상 범행의 설계자로 추정되는 전씨의 행방이 묘연해 지면서 천문학적인 피해액의 흐름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사건에 연루된 협력업체 대표 상당수가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전 대표를 사기대출의 총 설계자로 지목했다. 전씨가 평소 해박한 금융지식과 금융계 인맥을 동원해 하나은행,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과 13개 저축은행으로부터 지난 6년간 약 1조800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상환되지 않은 2800억원의 흐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계와 수사당국은 전씨가 미상환액 흐름과 면밀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서 대표는 공판 과정에서 900여억원을 전씨가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공범들도 조사과정에서 특수목적법인(SPC) 설립과 서류 위조 등을 모두 전씨가 주도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 인맥을 통해 미리 수사정황을 파악한 협력업체 대표들이 서 대표를 미리 출국시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지난 2월 경찰이 엔에쓰소울 본사를 압수수색하기 며칠 전 직원들이 서류를 폐기처분 하는 등 은폐의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결국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전씨의 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홍콩과 뉴질랜드, 남태평양의 섬으로 이어지는 전씨의 도피 경로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범죄자들이나 탈북자들이 흔히 행방을 감추기 이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경로이기 때문이다.
홍콩 현지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들이나 범죄자들은 인터폴 등 수사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유사한 경로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바누아투 이후 경로가 확인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실제로는 홍콩이나 인근 국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27일 대출사기에 협력한 김모 KT ENS 부장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또 함께 기소된 협력업체 대표 등 관련자 6명에게 징역 4∼7년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서 대표와 김 부장에게 징역 25년형, 나머지 피의자들에게 징역 7∼20년의 중형을 구형한 바 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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