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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54人의 끝나지 않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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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획취재팀장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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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놀라 게이(Enola Gay)'. 1945년 어제(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군 폭격기 B-29의 다른 이름이다. 에놀라 게이에서 떨어트린 4080㎏짜리 원자폭탄은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극단의 처방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에놀라 게이에 탑승해 항법사로 일했던 마지막 생존 승무원이 지난달 29일 93세를 일기로 숨졌다. 이로써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실제 투하한 사람들은 영원히 역사가 됐다.

다시 8월이다. 종전 7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또 다른 전쟁이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21년 전 이맘때 고노담화가 나왔다. 일본 정부가 1991년 12월부터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이다.

이 담화에서 일본은 "장기간에, 또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시인했다.

또 담화는 "위안부 모집, 이송, 관리 등에서 감언과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졌다"며 위안부 문제는 "결국 당시 군의 관여하에서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준 문제"라고 결론내렸다.
비록 '강제동원'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고 배상 문제에 대한 일절의 언급이 없었던 것이긴 하지만 기존 일본 정부의 태도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아베 행정부의 고노담화에 대한 검증은 '고노담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의 결과'라는 엉뚱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우익의 주장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21년 전 일본 정부의 '결론'을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 측은 "고노담화 검증은 고노담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검증을 통해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더 명확해졌다"고 밝혔는데 이런 어불성설도 없다 싶다.

더 나아가 일본의 우익 성향의 교수가 위안부 관련 영문책자를 발간하는 과정에 외무성과 총리관저 직원들이 비공식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아베의 이중적 태도는 과거에도 있어왔다. 2007년 미국 방문 때 "위안부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사과성 발언을 한 바 있지만 그 전후에서 지금까지 "일본군의 강제동원은 없었다"거나 "전쟁이 있었던 모든 국가에서 위안부가 있었다"는 등의 망언성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단일 주제 최장기 집회라는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는 '수요집회'는 어제로 1138회를 기록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물론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매주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들은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지 못한 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또 고령의 할머니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는 할머니들은 유럽과 미국에까지 날아가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채택 7주년을 맞아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이옥선 할머니(87)는 "아베 총리가 다시 전쟁을 시작했는데 편히 쉴 수가 없다"면서 "몸이 부서져도 반드시 사과를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말년을 편안히 지내야 할 할머니들을 누가, 무엇이 이처럼 '투사'로 만든 것일까. '사과와 배상'이라는 할머니들의 단순한, 정당한, 그래서 더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오히려 왜곡하는 일본의 자세는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민들을 우롱하고, 더 나아가 세계 시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에놀라 게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54명의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들은 오늘의 역사가 돼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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