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작은 '젖소부인 어게인'(가칭)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난 제작자였을 뿐인데 다들 에로배우를 했다고 손가락질을 해요. 뭐 어쩌겠습니까?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재도전 해야죠."


1980년대를 풍미했던 영화배우이자 영화제작자 한지일(67ㆍ사진)씨가 돌아온다. 복귀작은 '젖소부인 어게인'(가칭)이다.

한 씨는 '경찰관', '자유부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다다', '길소뜸'에 출연했고 대종상 신인상과 남우조연상,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당대의 최고 스타였다. 1990년 영화 제작사인 한시네마타운을 설립하면서 제작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젖소부인 바람났네(1995년)'가 히트 치면서 비디오 시장의 '큰손'으로 군림했다. 젖소부인 시리즈로 큰 돈을 벌었지만 '에로 전문가'라는 세간의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했다.


한때 100억대 자산가였던 그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삶이 평탄치 않았다. 재산을 몽땅 잃고 빈털터리가 됐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혼까지 했다. 택시기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그는 2009년 새출발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쪽방에서 잠자며 안 해본 일이 없다." 미국에서의 삶은 고됐다. 쪽방에서 생활하며 막노동판을 전전했고 뼈빠지게 일하는 동안 손톱은 휘고 앞니는 깨졌다. 지난해 9월 국내 한 TV프로그램에 비친 그는 미남의 면모는 사라지고 생활고에 찌든 모습으로 근황이 알려지기도 했다.


"툭하면 질질 짜는 내 모습이 방영된 뒤로 난 그저 '불쌍한 놈'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더욱 오기와 투지가 솟는다." 그가 흑인 미용품업체 뷰티서플라이에 입사해 두 달 남짓한 기간에 120개의 업체를 뚫는 괴력을 발휘한 것도 더이상 불쌍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50개도 뚫기 어렵다는 판로를 120개나 개척한 그는 '최우수 영업사원'으로 뽑혔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댈러스 등 미국 주요도시를 돌며 영업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애틀랜타의 한 대형 한인 마트에서 한국산 젓갈을 파는 일을 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는 다시 영화판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다. '벌거벗는 영화 찍는 놈' 등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게 싫어 300편의 저작권까지 마다하고 아예 한국을 떠난 그였다.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다시 영화다. 단 이번엔 에로 비디오가 아닌 도심 개봉관에 걸리는 '품격 있는 멜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르면 9월 일시 귀국해 시장 상황을 보고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그는 "다시 젖소부인이다. 한지일이 다시 돌아왔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해 '돌아온 젖소부인'이라고 할까 싶다"며 "20년 전 1탄을 찍었던 김인수 감독을 모시고 할 것이다. 주인공은 신인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AD

빛과 그림자였던 영화로 재기를 꿈꾸는 그는 실패가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잘 나갈 때엔 실패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실패하면 또다시 열심히 일하면 된다. 실패가 나를 이렇게 강하게 키웠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미국에서 고생하면서 조금 모은 돈이 있다. 그 돈으로 극장 영화를 만들어 날개를 펴고 싶다"며 "나처럼 나이 먹고 놀고 있는 감독과 스태프를 모셔서 좋은 영화 찍고 싶다. 영화계에 '우리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