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책을 펼치니 아늑한 조명등으로 변신한다. 운동화를 신고 선 채로 신발 끈을 잡아당기니 소형텐트가 펼쳐지며 온 몸을 뒤덮는다. 각각 디자이너와 유명 의류브랜드가 고안한 제품들이다. 여행과 이동성을 주목한 이 아이디어 상품들은 펼치고 접는 과정을 통해 부피를 줄이는 것 뿐 아니라, 평소에는 접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체험하게 한다.
이런 경험들은 여러 예술 장르의 작품 안에서도 가능하다. 작가 리케 일도우 드 용의 설치작품 '접이식 숙소'는 언제든지 펼치면 침대와 병풍이 되는 아늑한 숙소가 되고, 토마스 글라슨이 만든 영화 '집 이야기'는 자동차 위에 얹어진 주택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을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며 '이동과 정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최근 '노마디즘(nomadism)'과 관련된 디자인과 예술작품들을 소개하는 '돌아다니는 시각' 전이 열렸다. 노마디즘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개념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작품들을 통해 '이동'과 관련한 현대인의 생활과 삶의 자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데 의미가 있다. 고려 말 보부상들이 유목생활을 하며 사용했던 유물부터 노마디즘을 키워드로 풀어본 현대 디자인과 회화, 설치, 건축, 다큐멘터리 등 총 37점이 비치돼 있다. 민속박물관 소장품과 함께 한국 작가들을 비롯, 독일·네덜란드·프랑스·벨기에·호주·미국 등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다.
이 중 이준 작가의 '말하는 나무'라는 설치작품은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와 데이터들을 그림자 나무에 매달리게 한 것이다. 한 쪽 나무엔 실시간 검색어, 다른 한 쪽엔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이 나뭇잎처럼 걸려있다. '휴대폰, 노트북 등 첨단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자유롭게 떠도는 유목민'을 뜻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이다. 이준 작가는 "시시각각 가상공간에서 바뀌는 이슈들을 서로 대화하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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