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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한국의 야구장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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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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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와 두산의 시범경기에는 2만여 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관중석이 꽉 차진 않았지만 옛 무등구장 시절에는 한국시리즈를 치러도 들어오지 못할 많은 관중이었다. 2011년 11월 착공해 27개월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공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는 2만2천262개의 좌석이 마련돼 있다. 잔디밭으로 조성된 외야석이 특히 눈길을 끈다. 많은 관중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야구를 즐겼고, 내야 관중석 곳곳에 마련된 바비큐석에서는 간식을 먹으며 편하게 경기를 봤다. 메이저리그 구장과 같은 풍경이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엉덩이가 저려 오는 걸 참아가며 서너 시간씩 야구를 봐야 했던 올드 팬들에게는 놀랍기만 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21일에는 울산 야구장이 완공됐다. 이 야구장도 외야 관중석은 잔디밭이다. 내야에는 8088개의 좌석이 마련됐다.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는 4000명 정도를 보태면 1만 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2012년에는 포항에 1만5천 명 규모의 야구장이 준공돼 2013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비롯한 각종 대회가 열리고 있다. 포항과 울산은 ‘동해안 더비’로 불리는 스틸러스와 현대의 경기로 대표되는 축구 도시다. 그런 곳에 지난해 삼성(포항)에 이어 올해 롯데(울산)가 야구의 씨앗을 뿌렸다.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현대식 시설의 야구장은 단순히 야구팬들의 편의만을 도모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경기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돈이 돌게 된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프로야구 경기가 있는 날, 서울 잠실구장이나 부산 사직 구장 주변을 돌아보면 바로 알게 된다.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일들이 꿈만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55년 제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기간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연맹 총회에서는 1957년 제3회 대회를 서울에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수용 규모는 7천명 정도였고 외야에는 관중석이 없었다. 잔디밭 외야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다. 재정이 허약했던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야구장 증설 공사조차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1957년 5월 아시아야구연맹에 대회 반납을 통보했고, 제3회 대회는 이때로부터 2년 뒤인 1959년 도쿄에서 개최됐다. 서울에 유치했던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재정 문제와 경기장 시설 미비 등으로 반납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 1950년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요즘도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도쿄 6대학 리그가 열리고 있는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열린 이 대회 1차 리그에서 대표팀은 일본에 1-20으로 참패했다. 야구인들에게는 꽤 기분 나쁜 기억이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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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5회 대회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서울운동장 야구장은 내·외야를 감싸고 있던 미루나무를 베어 내고 관중석 확장 공사를 해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야구장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야구장다운 야구장이 반세기 전에 겨우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운동장 야구장에는 야간경기를 하기 위한 조명 시설이 없었다. 이제부터 신세대 팬들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일화가 이어진다.

신용균(투수)과 김응룡(1루수), 박현식(작고), 박영길(이상 외야수) 등 선수단은 첫 우승의 감격을 뒤로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을 방문해 박정희 의장에게 승전 소식을 알렸다. 이 자리에서 선수들은 한국 야구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 한 가지 약속을 얻어냈다. 서울운동장에 야간경기 조명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곧바로 지켜지지 않았다. 야간경기 조명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책정했던 서울시 예산이 풍수해 피해 복구 사업에 쓰였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야간경기 조명 시설이 설치된 건 그로부터 3년 뒤인 1966년 9월이었다. 그리고 1982년 3월 프로 야구가 출범했을 때 야간경기를 위한 조명 시설을 갖춘 경기장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이 유일했다.

야간경기를 위한 조명 시설을 만들긴 했지만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야간경기는 낭비라는 지적이 있기도 했고 “하루 기본 사용료가 2만5천 원으로 너무 비싸니 인하해 달라”는 야구계의 요구도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동대문운동장 축구장과 야구장에서 동시에 야간 경기를 하기 어려웠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변전 용량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 인근의 동대문실내링크는 전기 요금이 워낙 많이 나와 1964년 개장한 뒤 휴관과 재개관을 거듭하다 1980년 문을 닫았다. 일반 요금보다 싼 산업용 요금으로 바꿔 달라고 동력자원부 등에 호소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김연아 개인의 이름을 붙인 피겨스케이팅 전용 경기장이 거론되고 있는 요즘의 눈으로 보면 이 모든 일들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내년 말에는 2만9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구의 새 야구장이 완공돼 2016년 시즌부터 삼성과 대구 지역 아마추어 팀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공되는 8각형 야구장이라고 하니 구장 모양에 기대가 크다. 그리고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전기 요금 걱정 없이 경기를 할 수 있다. 이런 당연한 일이 불과 몇 십년 전에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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