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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경기장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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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럭비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인 1994년 6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럭비 대표팀 주장 프랑수아 피나르를 집무실로 초대한다. 만델라는 직접 가서 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얘기를 하며 "사람을 움직이는 스포츠의 힘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만델라는 피나르에게 1995년 남아공 럭비 월드컵을 흑백 화합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고 싶다는 구상을 들려주고 도움을 청한다.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인빅터스'에서 만델라는 이때 자신이 수감생활 중 애송한 시 '인빅터스'를 적은 쪽지를 피나르에게 건넨다. 영국의 19세기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이 시에서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 붙잡혀서도/나는 움찔하거나 소리 내 울지 않았다"며 "시련이 나를 후려쳤어도/내 머리는 피투성이가 됐으나, 숙여지지 않았다"고 외쳤다.
노장으로 데뷔해 바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이지만 이 장면은 상황과 어긋나는 느낌을 준다. 초면에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자리에서 결코 꺾이지 않는 의지를 노래한 이 시를 줬을까? 그랬다면 주장 피나르는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를 받으며 동시에 불굴의 의지를 주문받아, 고무되기보다는 중압감에 눌리지 않았을까?

의문은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인빅터스' 항목이 풀어준다. 실제로 만델라가 준 글은 이 시가 아니었다. 만델라는 '경기장의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진 다음 구절을 적어줬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1910년 프랑스 소르본대학 강연 중 일부다.

중요한 건 논평가가 아니다. 논평하는 자는 강한 사람이 어떻게 쓰러지거나 행동하는 사람이 어느 대목에서 더 잘할 수 있었는지, 결과를 놓고 지적할 뿐이다. 영예는 경기장 안에서, 얼굴이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된 채로 용감하게 분투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 사람은 몇 번이나 실수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하지만, 위대한 열정과 위대한 헌신을 알기에 가치 있는 대의에 온몸을 던진다. 그 사람은 최상의 경우 결국 높은 성취라는 승리를 손에 넣을 것임을 알며, 최악의 경우 실패하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하다 실패했기에, 승리도 패배도 알지 못하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에 비할 바가 결코 아님을 안다.
더할 말도, 덜 말도 없다. 이제 경기장에 서는,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뛸 선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파이팅!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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