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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김밥에서 한식 도시락 배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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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흔드는 김재열 선수단장[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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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 된다. 대한체육회가 이번 대회 기간 소치 시내에 선수 지원 센터인 ‘코리아 하우스’를 설치해 운영한다. ‘코리아 하우스’에는 마사지실, 급식 센터 등 각종 편의 및 지원 시설이 들어선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내용은 한식 도시락 배달이다. 선수들이 점심 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선수촌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기장에서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다.

태릉선수촌과 진천선수촌 수준의 식사면 전국 어느 고급 식당의 메뉴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태릉선수촌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점심시간과 겹쳐 정말 오랜만에 선수촌 식사를 하게 됐다. 먼저 유유 팩이 달랐다. 20여 년 전에는 삼각형 비닐 팩이었는데 이번에는 사각형 종이 팩이었다. 맛있는 음식에 신선한 과일과 주스까지. 글쓴이가 군 생활할 때 경험한 ‘1식 3찬’의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먹거리의 진화였다.
운동선수와 음식 그리고 경기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잘 먹어야 잘 뛸 수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그래서 외국 원정에 나선 선수들에게 세끼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일과 관련해 떠오르는 음식이 김밥이다.

1987년 2월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탁구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서울 올림픽을 1년 6개월여 앞두고 열렸다. 중국, 스웨덴, 일본, 헝가리 등 탁구 강국들의 관심이 어느 대회보다 높았다. 올림픽 개최국인 한국도 당연히 성적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영자, 현정화, 홍순화(이상 여자), 안재형, 유남규, 김택수(이상 남자) 등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선수단이 출전해 누구도 좋은 성적을 예상할 수 없었다. 당시 현정화와 김택수는 단발머리와 까까머리 고교생이었다. 몇 달 전에 열린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남녀 단체전과 남자 단식(유남규)에서 ‘만리장성’을 넘긴 했지만 경기 장소가 서울대체육관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다.

대회 초반에 진행된 단체전에서 중국이 남녀 모두 우승한 가운데 남자부에서는 스웨덴이 2위, 북한이 3위를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는 한국이 2위, 헝가리가 3위에 올랐다. 한국으로서는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남녀 단식과 복식이 세부 종목으로 열리게 돼 있어서 단체전 성적은 썩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루 휴식일 뒤 거대한 인디라 간디 체육관에는 36대의 탁구대가 들어서며 개인전이 펼쳐졌다. 이미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더운 날씨와 음식 등 이제부터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결정하는 변수가 정말 중요해졌다. 이때 등장한 음식이 김밥이다.
쇼트트랙의 박세영(왼쪽)-박승희 남매[사진=정재훈 기자]

쇼트트랙의 박세영(왼쪽)-박승희 남매[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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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굴지의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손꼽히는 배낭 여행지이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인도는 ‘먼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곳에서 김밥을 먹게 되다니. 하루에 몇 경기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은 점심 때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경기장에서 김밥으로 식사를 해결하면서 계속 뛰었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기자들도 선수단 여자 임원이 만든 김밥으로 한 끼를 거뜬히 해결했다. 한국 식당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쌀은 어지간한 곳이면 살 수 있으니 문제없고 전기밥통만 들고 가면 웬만한 음식은 모두 만들 수 있었다. 밥도 짓고 라면도 끓이고, 인스턴트식품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미역국과 북엇국도 전기밥통을 이용해 만들어 먹었다. 김과 김치는 기본이고 볶은 고추장, 멸치 볶음 등 밑반찬까지 한국 선수단의 짐이 다른 나라에 견줘 눈에 띄게 많은 것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 무렵 열흘 넘게 국제 대회 취재에 나서는 애주가 기자들 짐에는 팩 소주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각종 식재료가 듬뿍 담긴 ‘영양 김밥’에 힘을 얻었는지 양영자와 현정화는 여자 복식에서 중국의 리후이펀-다이리리 조를 누르고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밖에도 양영자가 단식 은메달, 안재형-유남규 조가 남자 복식 동메달, 양영자-안재형 조가 혼합복식 동메달 등 풍성한 수확으로 이듬해 서울 올림픽 호성적을 예고했다.

이제는 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선수단 임원이 아닌, 전문가가 만든 선수촌 수준의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까지 한다고 하니 나라의 경제력이 많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국가대표급 선수라면 양식도 잘 먹어야 한다”는 기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애기가 됐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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