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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시장 '탈스펙' 바람분다?… 취준생은 '눈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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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기업들 채용 과정서 '탈(脫)스펙' 선언
창의력·열정·스토리 보겠다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겐 또 하나의 '난관'
기존 정량평가에 정성평가까지 강화돼 취업 부담 가중


▲ 지난해 열린 한 채용박람회 행사장을 찾은 구직자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 지난해 열린 한 채용박람회 행사장을 찾은 구직자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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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 졸업 후 1년째 직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취업 재수생' 강정현(28·가명)씨는 최근 들어 인터넷 등에서 구직 공고를 볼 때마다 한숨이 더 깊어진다. 주요 기업이 요구하는 학점, 토익, 자격증은 사설 학원을 다녀가며 겨우 맞췄지만 이제 그 정도는 당연한 '기본기'이고 거기에다 '+α'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외부 활동이나 교내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던 강씨는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3주간 해외 봉사활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기업 채용 전형에 '탈(脫)스펙' 바람이 불고 있다. 학점과 자격증이 중요시되던 서류전형이나 천편일률적인 필기시험 대신 회사별로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화하면서 새로운 전형을 도입하는 곳이 증가하는 추세다.

채용 방식의 변화는 지난해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하반기 채용 전형에 길거리 캐스팅으로 인재를 뽑아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SK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뜬 '공개 오디션'을 열었고, 포스코나 LG도 창의성과 도전정신 등의 평가항목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삼성도 이 바람에 가세해 총장추천제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주고 있다.

스펙에 치우친 단편화된 채용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끼·스토리? 뭘 준비해야 하나···취업준비 '공황' = 취업 준비생들은 이 같은 현상이 반갑지 않다. '탈 스펙'을 오히려 특별한 스펙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끼나 창의성, 스토리가 강조되면서 기본 스펙에다 준비해야 할 항목이 더 늘어난 꼴이 됐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은 남보다 더 많은 특별한 경험을 요구하고 있어 경제적, 심리적인 부담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구직자 하지혜(23·여)씨는 "요즘 같아선 정말 다른 사람 인생을 돈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라며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고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해 가려는데 당장 비행기 값부터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구직자들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채용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개인교습이나 전문학원 강습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송동민(27·가명)씨는 "기업들이 면접에서 스토리나 개성을 중요시하면서 주변에 면접 과외를 받는 친구들도 있다"며 "기존에 취업 관련 온라인 카페나 스터디 모임에서 족보를 공유하거나 이슈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전형을 넘어갈 수 없고 차별화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형이 세분화되고 독특해질수록 답답한 구직자들이 외부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심하다. 대학 교육과정에서 활발한 토론이나 개인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취업을 앞두고 이 같은 역량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억지 봉사활동이나 해외 경험을 쌓는 경우도 많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모집하는 해외 교류활동, 국토대장정을 비롯한 체험활동 등이 수백대 1, 수천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것도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는 구직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해외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봉사활동이나 문화교류의 목적보다는 오지나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다녀왔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대학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직 과정에서 각종 전형 준비로 이미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어 일부 비용이 지원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채용방식이 다양화돼도 기존 전형에 대한 부담은 여전하다. 한 대형 서점에 근무하는 장화정 사원(27·여)은 "여전히 인·적성 관련 책을 찾는 고객이 굉장히 많다"며 "많이 나갈 땐 일주일에 수백권 이상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대학생을 인적 관리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있어 스펙은 물론 질적인 부분까지 완벽히 갖춰서 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취업 위주형으로 돼 있는 대학 교육과정을 포함한 교육제도 개선과 관리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인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당분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 주요 기업들, 이런 걸 봅니다 = 올해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은 지난해보다 소폭 줄어든 5만4500명을 신규채용할 예정이다.

삼성은 4월부터 신입사원 선발에 변경된 채용방식을 적용한다. 열린 채용을 위해 지난 1995년 폐지했던 서류전형을 부활해 자기소개서와 에세이를 평가하고 대학 총장 추천제도 도입한다. 정량평가가 아닌 지원자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을 거쳐 인재를 뽑겠다는 것이다.

SK는 지난해 지원자가 5분간 무대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끼'를 펼칠 수 있는 공개 오디션 방식을 도입했다. 신상을 기재하는 전형적인 서류를 탈피해 자기소개서만으로 지원자를 추린 뒤 끼와 열정을 갖춘 '바이킹형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선발한 후 4개월동안 봉사 및 현장활동을 거쳐 최종 합격을 결정짓는 '더 에이치(THE H)'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간기업의 이 같은 흐름에 공공기관도 힘을 싣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직원 채용시 서류전형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포스코는 신입사원과 포스코 스칼라십, 해외채용으로 전형을 세분화하고 서류전형에서 출신학교와 학점 등의 기재란을 없앤 포스코 챌린지 인턴십을 추가했다. 열정과 잠재역량을 평가해 스펙쌓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역사관에 대한 중요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GS그룹은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시 한국사 시험을 도입하고, 현대차는 지난해 역사 관련 문항에 1000자 이내로 서술하는 역사에세이를 추가했다. 포스코는 한국사 자격증 보유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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