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정보유출,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파장
◆CEO 줄사표 내게 만든 정보유출= 20일 오후 5시를 갓 넘긴 시각 손경익 농협카드 사장(농협은행 카드부문 분사장)이 카드 3사 경영진 가운데 가장 먼저 사의를 밝혔고 농협은행은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 농협 측은 "사태의 조기 수습과 고객신뢰 회복을 위해 곧 카드분야 전문가를 후임 사장으로 선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협의 카드 부문 임원은 손 사장 한 명이다.
KB 측은 "지난 주말 임영록 회장이 주재한 대책회의에서 심재오 국민카드 사장이 먼저 사의를 밝혔고, 이어 이건호 국민은행장도 지난해 잇따랐던 사고에 이어 결제계좌 정보까지 빠져나가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면서 사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 행장의 경우 이번 사건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취임 후 잇따랐던 사고의 책임을 지고 재신임을 묻는다는 의미로 사의를 밝혔다는 게 행내 관계자들의 말이다.
임원들의 줄사표에 임 회장은 "사표보다 사태 수습이 급선무"라면서 조직을 다잡았지만, 카드사 임원진을 포함 일부 임원에 대한 사표는 선별적으로 수리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사 신뢰 무너뜨린 고객정보 유출= 카드사 대표들이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지고 잇달아 사퇴의사를 표시한 것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나타내는 단면이다. 정보유출에 따른 금전적 피해도 걱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금융회사 신뢰에 큰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이 이번 정보유출사태와 관련해 "신용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들이 근본적으로 신뢰를 뒤흔들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회사들의 잇단 정보유출이 신뢰사회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고객은 믿음을 바탕으로 재산을 맡기고 금융회사는 이를 토대로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의 기본 메커니즘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카드사 고객 가운데 일부는 "내 정보가 언제 어떻게 유출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을 감안하면 카드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라는 조롱 섞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정보유출에 따른 정신적인 피해도 보상해달라는 요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유출된 정보가 2차 피해로 확대된다면 금융회사에 대한 신뢰 상실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스팸문자가 늘어나면서 금융회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이스피싱·스미싱 같은 전자금융사기에 따른 피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이미 유출된 정보에 비밀번호 같은 몇 가지 정보를 더 알아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CVC값과 비밀번호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금전적 피해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등 금융회사들은 올 초 '신뢰회복'을 앞다퉈 화두로 제시했지만 현재로서는 신뢰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