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깜박 잠시만 한눈 팔아도 현안에서 저만치 동떨어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오래 전 어느 편집국에선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친 채 미간을 찡그리고 신문에 몰입한 노기자의 어깨 구부정한 삼매경을 얼핏 목격했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가슴 찡한 신문사 풍경 가운데 하나다(그 노 선배는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느 추운 겨울날 딱 이맘때쯤 수줍은 미소의 빛바랜 사진과 몇 줄 부음기사를 신문 한 귀퉁이에 남긴 채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척하면 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제목만 봐도 기사내용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바이라인만 보고도 기사의 신뢰도를 측정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A신문사의 B기자가 쓴 기사는 믿어도 된다'거나 'C기자가 쓴 기사는 20%만 사실'이라는 식의 감식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신문을 보는 시간이 확 줄어들게 된다. 초년시절 3~4시간 걸렸던 걸 20~30분 만에 뚝딱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고들 하는 이른바 '1만시간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얼추 기자생활 10년쯤 되면 이런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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