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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8장 추억과 상처 사이(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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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8장 추억과 상처 사이(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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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 아저씨의 수상한 행동이 시작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육십대 중반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그 역시 <베트남을 생각하는 작가모임>의 행사 소식을 듣고 여행 차 옵저버로 참가했는데, 고향인 옥천에서 돼지를 기른다고 했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익어갈 무렵, 그는 느닷없이 일어나서 혼자 기괴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투다다다다다.....”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손짓으로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곧 있다가 총을 들고 전방을 향해 “드르륵, 드르륵... 티웅, 티웅...” 소리를 내며 총을 갈겨대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씨웅, 콰앙...!”하고 대포 터지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처음엔 장난인가 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하림은 그 아저씨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 머리를 옆으로 재끼고 아저씨가 하는 양을 태평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씨 아저씨의 얼굴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고, 눈빛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으로만 끝났으면 그냥 해프닝이 되었을 것이다. 웃자고 하는 코미디 쯤으로 치부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기어코 소리까지 지르고 말았다.
“아-우, 아-우...!”
그런 이상한 짐승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곤 이어,
“여기 오바, 호랑이 오바, 떴다 오바, 아, 씨팔 베트콩이다! 베트콩! 이 개새끼들!”
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베트콩이란 말에 순간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못 알아들어도 그 단어와 다음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과거 베트콩이었을 사람들이 적잖게 앉아있을 터였다.
하지만 아저씨의 이상한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들어가! 씨팔 새끼들! 야, 김병장! 뭣해! 빨리 바위 뒤로 숨어!”
그러면서 아저씨는 귀를 가린 채 허급지급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기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 또 다시 “씨웅, 콰앙...!” 이었고, “투다다다다....” 였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어색하고 참담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때마침 회장을 맡고 있던 이가 달려와 재치있는 말로 아저씨를 말리며 일으켰고, 다들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저씨의 행동은 곧 쉽게 묻혀졌다.
노래 순서가 되자 베트남 문인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노래를 불렀고, 한국에서 온 문인들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가요를 불렀다. 다만 한씨 아저씨만 가끔 기괴한 짐승 같은 소리를 혼자 “아-우! 아-우!” 하고 조그맣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문인도 아니고 옵저버로 따라온 그 아저씨에게 더 이상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사람 머리 속엔 지금도 전투가 한창이군.”
동희형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사실 한씨 아저씨의 이상한 행동이 시작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아까 세미나 장에서도 벌써 그랬다.
베트남 측 작가 중의 하나가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 배경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할 때였다.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말하라면 먼저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트남은 여러분의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중국대륙의 한쪽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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