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돈도 좋아요!"…'소호'에 러브콜 날리는 은행들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김은별 기자] #"오늘은 1조가 원정나갈 차롑니다." 논현동 A은행 지점의 점심시간. 직원들이 두 조로 나뉘어 인근 먹자골목 탐방에 나선다. '얼굴도장'을 찍어 신규 대출을 확장하려는 몸부림이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엔 "혹시 대출이 필요하시면 찾아달라"면서 은행 로고가 또렷하게 박힌 치약과 샴푸를 계산대에 슬며시 올려놓는다.
#삼성동 B은행 지점 여직원들은 모두 OO미용실 단골이다. 일주일 전에는 P차장이 머리를 잘랐고, 이번 주엔 K과장이 길지도 않은 앞머리를 다듬었다. 새로 문을 연 지점 앞 미용실과 거래를 터보려는 안간힘이다. 여직원들이 할 때도 안 된 머리를 만져가며 터를 다진 끝에 이 지점은 미용실의 카드 결제계좌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결제계좌를 유치하면 주거래 고객으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다.
두 지점의 발로 뛰는 영업 이야기는 요사이 은행권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 곳 모두 강남 한복판, 소위 돈이 모이는 동네에 있지만 직원들은 요사이 생존 경쟁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고 털어놨다. 경기가 나쁜데다 금리까지 떨어져 돈을 빌리지도, 맡기지도 않는 탓이다.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새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독려하면서 실적을 체크하고 있는 것도 강도 높은 영업을 채근하는 요인이다.
그러다보니 은행마다 지점마다 저만의 생존 전략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주요 타깃은 소호(SOHOㆍ소규모 자영업)다. 은행들은 동네별 특성에 따라 맞춤형 영업전략을 짜 소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학원가가 밀집한 대치동 C은행 지점에선 그래서 건물마다 들어선 학원을 전수조사해 방과후 교실 지도를 그렸다. 이 지점 관계자는 "학원은 매월 고정수입이 들어오고, 수강생이 늘면 확장 수요가 있어 예금이나 대출 양쪽에서 모두 중요한 고객"이라면서 "경기 상황과 교육 트렌드를 반영해 신규 고객을 공략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타깃은 '국ㆍ영ㆍ수' 학원이다. 경기가 시들해 축구교실이나 미술ㆍ음악 같은 예체능 학원은 수강생이 크게 줄었지만, 내신의 3대 과목인 국영수 시장은 내수 위축에도 굳건하다.
직장인들이 많은 시내 중심가의 지점들은 불경기에도 활황인 업종을 찾아 영업 전략을 짜고 있다. 소공동 K은행 지점은 경기가 나빠도 여성 직장인들이 꾸준히 찾는 네일케어숍 등을 중심으로 발품을 파는 중이다.
역세권 지하상가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이소민 사장(33)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은행 지점에서 찾아와 우대금리를 제공할테니 대출을 받으라고 권한다"면서 "예약 전화보다 대출상품을 권하는 전화가 더 많이 오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치열한 영업 덕분에 주요 은행의 1분기 소호 대출은 대부분 증가세를 보였다. 우리은행의 1분기 소호대출액은 28조974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 28조410억원보다 3.3%(9330억원) 늘었다. 신한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도 지난해 말 25조원에서 올해 1분기 25조5000억원으로 2%(5000억원)증가했다. 하나은행 역시 지난해 4분기 11조9180억원이던 소호대출 규모가 1분기 12조7090억원으로 6.3%(7910억원) 확대됐다.
다만 대출 규모가 큰 부동산 임대업이나 숙박업 대신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출을 늘린 국민은행은 종전 39조3000억원이던 소호대출액이 1분기 38조5000억원으로 2%(8000억원) 감소했다.
◆소호대출이란= 소호(SOHO, 개인자영업자)대출이란 법인사업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대출이다. 수익성 악화로 고심하고 있는 은행권에서 최근 알짜 대출처로 부상하고 있는 분야다. 특히 최근들어 서민금융이나 영세한 자영업자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은행들은 소호대출을 더욱 늘리고 있다.
각 은행별로 소호대출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기본적으로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기준은 동일하지만, 은행별로 취급하는 상품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소호대출에 포함되는 금융상품으로는 ▲카드 가맹점 결제대금 이체통장(점포에 방문한 고객이 카드로 결제하면 결제대금을 카드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통장) ▲카드 가맹점 결제계좌 잔액을 바탕으로 지원되는 신용대출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출 ▲소호전용 부동산 담보대출 ▲신용보증서 협약대출 등이 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