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긴급조치 4호도 위헌·무효"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유신시절 권력을 향한 국민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도구였던 긴급조치 처벌규정이 차례로 위헌·무효가 확인되고 있다. 긴급조치 발동의 근거 조항인 유신헌법 53조가 폐지된 지 33년만에 긴급조치 4호도 위헌이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6일 대통령긴급조치위반 및 반공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확정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한 추영현(83)씨에 대한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4호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에 위배되며,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학문의 자유 및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폐지 이전부터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 비춰 보더라도 위헌·무효”라고 밝혔다.
이로써 긴급조치로 유죄판결받은 피해자들에 대한 처벌 규정은 2010년 긴급조치 1호, 지난달 긴급조치 9호에 이어 긴급조치 4호까지 차례로 위헌·무효가 선언됐다. 추씨를 포함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유죄 내지 면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나 유족들은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 및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 53조를 근거로 1974~1975년 긴급조치 1~9호를 발동했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목돼 온 유신헌법 53조는 1980년 10월 폐지됐지만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140명에 달한다.
1974년 4월 선포된 긴급조치 4호는 민청학련 등 단체 가입 및 관련 활동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도 체포·구속·압수수색해 비상군법회의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추씨는 북한의 실상 관련 유언비어를 꾸며내 퍼뜨리고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동조함은 물론 대통령 긴급조치를 비방했다는 이유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1975년 3월 징역12년에 자격정지12년 형이 확정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조사 결과 추씨에겐 수사 당시 불법 체포·감금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가 가해진 사실이 인정됐다. 추씨는 2009년 재심을 청구해 2년 뒤 서울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유신헌법 아래 합헌이라고 판시한 대법원 판결들을 폐기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사법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유신헌법 53조에 근거한 긴급조치 4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당초부터 위헌이고, 재심판결 당시 법령이 폐지됐다 하더라도 그 폐지가 당초부터 헌법에 위반돼 효력이 없는 법령에 대한 것이면 무죄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대법원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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