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저 '유사 노래방' 간판들은 저토록 버젓하게 늘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 당국의 관계자들이 쌍안대를 하고 다니는 분들이 아니라면, 저 간판들이 안 보일리 없고, 보이면 그저 들어가서 왜 저런 간판을 쓰느냐고 따진 뒤 행정 처분만 해도 금방 근절될 것 같은 풍습인데, 노래팡은 어제도 오늘도 건재하다.
올해 신문사에선 이제 국가의 품격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기본을 갖추자는 어젠다의 하나로 '정직'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정직은 큰 정직과 작은 정직이 있지만, 정직의 기본은 작은 정직에서 시작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실로 깨알 한 알만한 것의 정직이 살아 있어야, 세상의 정직의 기틀이 선다. 장사가 속임수라는 개념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적대적인 공존이던 시절의 각박한 공기를 함의한다. 이 오래된 그리고 유치찬란한 노래팡의 속임수는 어떤가. 파는 자가 정직해지지 않으면 사는 자도 의심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 파는 자도 복잡한 문법으로 경쟁하고 판매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이름 하나도 못 바로잡는 나라가, 언제 정직해질까.
<이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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