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2013-정직]사인하기 전 약관 설명 솔직하게 했습니까
고객보다 실적부터 생각하는 금융업계에 묻습니다
中企에 키코 위험성 더 강조했어야
금리로 고객유혹 저축은행 사태 발생
다양한 금융상품, 공급자가 책임져야
정보불균형, 정직으로 극복할 수 있어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시중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2011년 9월부터 7개월 동안 고액 자산가 50 명에게 저축성 보험상품을 팔면서 일시에 보험료를 다 낼 수 없고 2년에 걸쳐 매년 한 차례씩 나눠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설명과 달리 해당 상품은 보험료를 한꺼번에 모두 낼 수 있었고, 나눠 내는 것보다 만기가 됐을 때 고객이 돌려받는 금액이 더 많았다. 직원 A씨는 실적을 분산해서 올리는 게 자신의 인사 평가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고객을 속이고 만 것이다. 고객 50명이 입게 된 피해는 모두 7800만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방카슈랑스 영업 행태 검사 결과의 일부 사례다. 은행 직원 A씨는 수개월 간 고액자산가를 속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의 상품을 판매했다. 수억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재테크에 관심이 높은 고객이라면 금융상식도 비교적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50명이 모두 당하고 말았다.
금융권에서의 '정직'은 곧 '신뢰'와 연결된다. 제조업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 상품을 취급하는 업종인 만큼 회사와 고객의 상호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금융권에서 이 같은 병폐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금융 고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씨처럼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금융권에서 주목받는 이유다.
직원 A씨가 고객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언뜻 정보불균형의 차이로 볼 수 있다. A씨 뿐 아니라 금융권 근무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유혹임에 틀림없다. 금융은 다른 서비스 상품과 달리 세금, 법, 경제원리 등 다양한 요소가 적용되는데 일반인들이 이를 알기란 쉽지 않다. 직원이 승진을 위해 실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고객 돈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한 셈이다.
정보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피해 여파는 굵직한 사건사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내 중소기업들이 환위험 헤지와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파생상품, 키코(KIKO, Knock in-Knock out)에 대거 가입했다가 원화값이 하락하면서 대규모 환손실을 입은 바 있다. 이 상품은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게 외화를 팔 수 있지만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한다.
은행이 수익성만을 강조하면서 환율 변동 등에 따른 영향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인들은 솔깃할 수밖에 없다.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이 무너지면서 후순위채에 투자한 가입자들은 구제받을 방법이 지금까지도 전혀 없다. 저축은행 직원이 시중금리보다 몇 % 높은 이자를 적용해준다는 말만 믿고 자금을 맡긴게 화근이었다.
김용우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총괄국장은 "저축은행 민원을 분석해보면 금리가 더 높은 상품을 권유할 때 후순위채라는 점은 언급하지 않고 위험성 역시 은근 슬쩍 넘어가는 사례가 문제를 키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은행 등 금융기관도 할 말은 있다. 정직하게 설명을 해도 금융상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위험성을 밝혀도 이를 무시해 피해를 입고 금융기관에 손해배상을 하라는 식이다. 고객의 부족한 금융지식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게 금융기관의 입장이다.
이유야 어쨌든 금융권이 부도덕에 빠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시장에서 상인에게 속아 하자 있는 제품을 구입하면 교환하거나 다시는 이용을 안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금융에서는 개인의 신용에 금이 갈 수 있다. 신용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신용카드를 이용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기관 역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정보불균형이 없어지면 직원들이 고객을 속이는 행위도 사라질 수 있을까.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각종 금융권 협회에서는 청소년 뿐 아니라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금융상식 넓히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금융교육을 확대하면 상품 선택시 정보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교육이 금융기관의 정직한 상품판매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김대식 보험연구원장은 "금융교육을 실시해도 막상 상품을 구매할 때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워낙 상품 조건이 다양한 만큼 금융전문가들도 정작 내용을 모두 파악해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결국 공급자가 100%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우 국장은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 필수라고 말했다. 금융상품의 포지셔닝이 없다는 게 결국 금융권의 부도덕을 양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연령이나 직종별로 상품을 특화해 판매해야 하는데 대부분 금융기관들이 똑같은 상품을 내놓으니 고객의 관심은 떨어지고, 결국 아무리 상품을 설명해도 모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평가시스템도 고객을 속이는 행위에 일조하고 있다. 자산을 운용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긴 안목이 필요한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일년 단위의 실적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언이설로 무조건 신규고객을 유치하고 보는 영업전략은 이 같은 토대에서 비롯됐다.
김 국장은 "임기 2년을 넘지 못하는 CEO, 사업을 키우기를 바라는 주주의 합작품이 정직과는 거리가 먼 경영풍토를 만들었고 소비자보호를 뒷전으로 밀려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정직을 기반으로 한 소비자 만족에 나서고 있다. 신규 고객 유치에 따른 수당을 줄이고 유지기간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정직만이 금융회사와 고객이 상생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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