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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끼들로 멍든 대학로 연극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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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인근 연극티켓 호객꾼과 행인 사이에서 금전거래가 오가는 모습.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인근 연극티켓 호객꾼과 행인 사이에서 금전거래가 오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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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연극의 성지 '대학로'가 멍들고 있다. 여러 차례 연극인들의 자정과 캠페인 등 갖은 노력에도 일명 '삐끼'들의 호객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최근 혜화파출소에서 전담 인력을 배치했는데도 전혀 줄어드는 기색이 없다. 대학로 일대의 삐끼는 100여명 정도로 공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이에 대한 근절책이 시급하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앞. 삼삼오오 무리지어 전단지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호객행위에 한창이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예매하셨어요?"라고 물으며,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정가보다 30% 싸게 좋은 좌석으로 공연을 보여주겠다며 재빠른 어투로 연극홍보에 열을 높인다. 거리에서 직접 돈 거래가 오가기도 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삐끼들이 이렇게 대학로를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공공연하게 금전거래를 일삼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대학로에서 마주한 장면이다. 대학로는 소극장들이 밀집된 문화지역으로, 일찍이 연극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15년 넘게 지속된 불법 호객행위로 순수연극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이곳 연극계의 하소연이다. 더욱이 거리에서 이뤄지는 금전거래나 정보왜곡 등으로 극단들의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대학로 이미지 실추와 청소년들을 범죄로 몰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대경 소극장협회 이사장은 "공연홍보라는 미명하에 티켓 한 개를 판매할 때 20%의 수당을 갖는 조건으로 100여명의 호객꾼을 동원한 소수 극단들이 수당을 미끼로 철모르는 청소년들을 불법의 현장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대학로를 찾는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소극장협회에 따르면 대학로 내 150여개 극단 중 소수인 6~7개 극단들이 이런 호객꾼들을 활용해 공연을 홍보하고 있다. 주로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 공원 뒷골목에 자리한 극단들이다. 공연되는 연극 종류는 코미디, 패러디 물이거나 19금 연극이다. 이들 극단들은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1만~3만원대 연극 티켓을 거리에서 직접 홍보, 판매하게 한다. 시급 7000원에 티켓판매수당은 한 장당 2500원 이상이다. 판만큼 많은 수입을 가져가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들은 더욱 티켓 팔기에 혈안이다. 한데 거리에서의 거래는 불법으로, 발각될 시 5만원 내지 최대 20만원 미만의 과태료를 내야하는 경범죄에 해당한다.
대학로 내에서 20년 동안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호객꾼들 중 방학 때 중고등학생들도 많은데, 연극과는 무관한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이거나 학생들이 대다수"라면서 "주로 선정적이거나 짜임새 없는 연극들인데, 삐끼들을 통해 연극을 봤던 사람들 중에는 다시는 대학로 연극을 안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호객꾼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보이며 티켓 판매 대상인 연극 공연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호객꾼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보이며 티켓 판매 대상인 연극 공연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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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대학로에서 만난 이 모(여 20대)씨는 "혜화역 인근 도로변으로 마로니에공원까지 가는 동안 한 두명이 아니라 수십명의 삐끼들을 지나치면서 3~4차례는 계속 붙잡혀 이야기를 들어줘야했고 관심 없다고 하면 갑자기 불친절한 태도를 보이기도 해 불편하고 당황스러웠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 극단은 거리 홍보와 금전거래를 넘어, 다른 극장들의 공연에 대한 왜곡정보를 행인들에게 전달하고 해당 극단 자체적으로 인터넷 예매 후 반환청구 하는 과정에서 캡처한 예매순위로 허위 광고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이사장은 "이곳 모든 극단들이 다 뛰쳐나와 홍보하면 대학로가 얼마나 엉망이 되겠나"라면서 "19금이든 개그물이든 연극 장르에 대한 판단은 다양성 측면에서 유보하더라도, 불법호객행위와 왜곡정보 난무는 근절돼야 할 사항인데 현재 법적 제어망이 미약해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극장협회는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호객행위 근절 캠페인을 벌인 후 지난 6월 소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불법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공연법 개정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공연법 법조항이 없어도 다른 관련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법 이전에 극장관계자들 사이의 자정활동이 더 필요하고, 공연법에 호객행위 방지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더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로 관할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대학로 호객행위와 관련해 금전거래 행위를 현장에서 적발할 때에만 직결심판청구를 통해 재판을 받게 할 수 있다"면서 "인력 문제로 매일 현장에서 단속하기도 쉽지 않고, 적발되더라도 경범죄로 처리되며 어린 학생들일 경우 훈방조치하는 게 대다수"라고 언급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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