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황지수-이명주, 공익·재수생의 기막힌 '역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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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요즘 K리그에 가장 잘 나가는 팀을 꼽으라면 단연 '강철 군단' 포항 스틸러스다. 5연승의 광폭 행보. 시즌 초의 기복과 부진은 사라진지 오래다. 순위는 5위지만 기세는 선두권을 위협하고도 남는다. 상위권 감독들도 입을 모아 포항을 후반기 '다크호스'로 꼽는다.


가파른 상승세의 비결, 가장 먼저 6월 대반전을 일궈냈던 제로톱 전술이 떠오른다. 전방 공격수들의 부진에 골머리를 앓던 황선홍 감독이 유로 2012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노림수는 적중했다. 미드필드가 강한 포항으로선 최적의 선택이었다. 빠르고 세밀한 패스 플레이의 영토는 중원을 넘어 최전방까지 확장됐다. 그 속에서 '황카카' 황진성이 시쳇말로 포텐을 터뜨렸다. 그가 막혀있던 입구를 뚫어주자 포항의 화력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덕분에 최전방 박성호까지 폭발했다. 빈약했던 득점력이 살아나자 포항은 재빠르게 또 한 번 변신했다. 4-2-3-1 포메이션의 채택, 두터운 중원에 날카로운 창끝을 겸비했다. 어떤 팀을 만나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화려한 질주에 자칫 황진성과 박성호에만 눈을 뺏기기 쉽지만, 그 뒤엔 묵묵히 뒤를 받친 숨은 조력자가 있다. '신(新) 더블 볼란테' 황지수-이명주다. 물샐틈 없는 압박, 왕성한 활동량, 엄청난 투쟁심으로 중원에 강한 힘을 불어넣는다. 올 시즌 김재성의 입대와 신형민의 이적에도 포항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황지수는 K리그 데뷔 10년차의 베테랑 미드필더. 반면 이명주는 올해 갓 데뷔한 신예다. 9살이란 나이 터울도 있다. 그런데 둘 사이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어이없는 실수로 선수 경력에 치명적 위기를 맞았던 경험이다.


'한국의 가투소'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2009년, 황지수는 갑작스레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게 됐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불과 한 달 앞둔 때였다. 더 치명적이었던 건 전성기가 됐을 2년을 통째로 날리게 됐다는 점이었다.


이명주의 악몽은 더 황당하다. 수능 시험 당일, 별 생각 없이 휴대폰을 들고 고사장에 들어갔다 적발됐다. 시험도 못보고 쫓겨났다. 대학 진학을 앞둔 체육특기생에서 졸지에 재수생이 돼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 결국 1년을 '대학 연습생'으로 허송세월했다.


태풍 앞에 연약한 나무는 뿌리째 뽑히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오히려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린다. 다행히 둘은 후자였다. 시련의 시기를 이겨내고 스틸야드에 다시 우뚝 섰다. 황지수는 새로운 팀의 '캡틴'으로, 이명주는 8년 만의 포항 출신 신인왕 후보로 지목됐다. 검붉은 줄무늬 유니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들과 대화를 나눈 뒤, 포항의 상승세를 설명할 또 하나의 근거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다면 과장일까.


[사진=포항 스틸러스 제공]

[사진=포항 스틸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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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투소, 그라운드가 아닌 마당 눈을 쓸다

황지수란 미드필더, 정말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K리그 정상급 홀딩맨으로 꼽히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표팀에도 발탁됐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군에 입대한다는 소식과 함께 사라졌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건가
2009년에 만 스물여덟이었다. 상무는 연령 제한에 걸렸지만 경찰청엔 갈 수 있던 나이였다. 구단과 파리아스 감독님 요청 하에 입대를 연기했었다. 그런데 10월에 갑자기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라는 통지서가 왔다. 깜짝 놀라 알아보니 입대시기를 잘못 조율한 거였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연기도 안 된다고 했다. 청천벽력이었다. 시즌 중이었고, 어떻게 보면 2년을 통째로 허송세월하게 된 거였으니….


입대했을 때 정말 막막하지 않던가
처음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 정말 힘들었다. 첫날 취침시간에 누워서 천장을 보는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었다. 나이 들어서 가니까 엄청 서럽더라. (웃음)


나도 만 스물일곱에 군대 가봐서 그 기분 알 것 같다
아, 반갑다. (웃음) 그럼 더 잘 알지 않나. 훈련소 조교도 나보다 어리고, 훈련도 힘들고….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괴로웠다. 훈련소 있을 때 포항과 알 이티하드의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당연히 경기는 못보고 신문으로 결과를 접했는데, 좀 뭐랄까. 혼란스러웠다. 박탈감도 있었고, 축하하고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허하더라. 훈련소에 있으면서 몸도 점점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미드필더로서 전성기를 보낼 시기를 통째로 날려버린 셈이었다.
그냥 훈련소 나오면서 모든 걸 내려놨다. 고민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 할 일을 스스로 찾아서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공익근무하면서 K3리그(현 챌린저스리그)양주시민축구단에 입단했다. 하지만 솔직히 K3에서 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나
아무래도 K리그에 있을 때와는 큰 차이가 난다. 일단 프로에선 짧은 훈련 시간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고 나머지 시간은 편히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한다. 반면 공익근무는 오전-오후 내내 일한다. 훈련은 저녁에 할 수밖에 없었다. 생활패턴이 달라지다 보니 신체 리듬을 잡는 게 어려웠다. 매주 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3부리그다 보니 실전감각도 뚝 떨어졌고.


여담이지만 공익근무할 때 주로 뭐했나
동두천의 한 동사무소에서 일했는데, 뭐…. 특별할 것 없다. 맨날 복사만 했다. 아, 제설할 때가 제일 괴로웠다. 정말 내가 뭐하나 싶더라. (웃음)


상대 중원을 쓸어 담던 진공청소기가 졸지에 동사무소 마당 눈을 치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공익근무 시절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힘든 시기에 큰 버팀목이 되준 '내조의 여왕'이라 들었다
입대하기 전부터 만나다 2010년에 결혼했다. 요즘 잘 나가는 (황)진성이 못잖게 나도 아내 덕을 많이 봤다. 특히 K3리그에서 내가 불안해할 때 “K리그 돌아가서 잘할 수 있다”, “서른 살 넘어서도 충분히 A대표팀에 다시 뽑힐 수 있다”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런 식으로 조언을 많이 해주고 힘을 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그런지 머리도 좋다. (웃음)


노총각 듣기 괴롭다. 이 질문은 여기까지, 음. 지난해 소집해제 돼서 팀에 돌아왔었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일단 감독이 바뀌었고, 확실히 몸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았을 텐데
굉장히 불안했다. 그래서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작년 11월에 기존 계약도 만료됐었다. 또 포항은 유스가 강한 팀 아닌가. 밑에서부터 좋은 애들이 쑥쑥 올라온다. 황선홍 감독님께 믿음을 주지 못하면 졸지에 팀에서 떠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이를 더 악물었다. 다행히 감독님께 인정받아 재계약을 맺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올 시즌 시작을 2군에서 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 겪는 일이라 느낀 게 많았을 듯하다
2004년 프로 입단 후 줄곧 1군에만 있었다. 당연히 그동안 2군 선수들의 애환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2군에서 지내면서 그런 점을 많이 깨달았다. 1군 선수들은 모른다. 육체적으로 그렇고, 특히 정신적으로 힘들다. 사실 전부 학창시절 난다긴다하던 선수들 아닌가. 막상 프로에 오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이런저런 얘기를 통해 후배들과 속내를 많이 나눴다.


그런 점이 주장직을 수행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겠다
맞다. 사실 올 시즌 주장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신)형민이가 갑자기 떠나면서 완장을 찼는데, 부담이 컸다. 그런 점에서 2군에서의 경험은 다행이었다. 지금도 후배나 어린 선수들을 배려하려고 노력을 한다.


어떻게 보면 공익근무를 하고, 2군도 경험했던 것이 어느 정도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지금 잘 됐으니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 그 땐 죽을 맛이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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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각보다 1군에 빠르게 복귀했다. 3월 부산 아이파크와의 정규리그 3라운드 홈경기였는데, 당시 기억나나
감격스러웠다. 스틸야드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풀타임도 뛰었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뛰는 건 정말 힘들었다. 경기 감각도 그렇고, 체력적으로도 부쳤다. 오랜만에 뛰니까 페이스 조절이 안되더라. 후반 들어가니까 숨이 탁탁 차올랐다. 공이 오는데 겁나고 피해다니고. 안 받으러 가고 막 그랬다. (웃음) 그래도 감독님이 혼내지 않고 기다려 주셔서 다행이었다. 최근 FA컵 4강전이 개인적으로는 터닝 포인트였다. 경기 감각을 완전히 되찾은 게 느껴졌다, 내 포지션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것 같더라.


파리아스 감독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내 경우 파리아스 감독님 땐 대부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섰다. 상대편 공격형 미드필더를 봉쇄하는 게 주 임무였다. 지금은 중앙 미드필더로서 수비는 물론 공격도 하고,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미드필더로서 더 많은 일을 맡았다. 전술적이나 플레이 면에선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한국의 가투소' 혹은 '황투소'란 별명에 더 걸맞은 플레이인 셈이다
맞다. 지금이 더 가투소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말 들으면 좀 쑥스럽다. 진성이가 황카카로 불리는 것처럼. (웃음) 그냥 내 플레이가 가투소처럼 거친 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가끔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공격적 역할도 맡다 보니 이제 슬슬 골 욕심도 난다. 하나만 터지면 되는데, 안 터지는 게 문제다. (웃음)


아까도 슬쩍 내비쳤지만 대표팀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솔직히 크지 않나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2008년 초에 허정무 감독님이 대표팀에 불러주셔서 A매치 두 경기를 뛰었는데,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던 게 사실이다. 재도전해보고 싶다. 어느덧 30대지만 충분히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몸 상태나 경기 감각도 거의 예전 수준을 회복했으니, 자신있다.


[사진=포항 스틸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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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출신 '황태자'


자, 지금부턴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명주 차례다. 명성은 인터뷰 오기 전에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모든 답변을 세 단어로 끊어친다고 하더라. 준비는 됐나
음…. 잘 모르겠다.


정확히 세 단어다. 오늘 좀 힘들 것 같다. 일단 그 얘기부터 해보자. 솔직히 황지수의 군입대 실수는 안타깝긴 했지만 있을 법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명주의 실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다. 수능시험장에 휴대폰을 들고 가다니. 단도직입으로 묻자. 안 걸릴 줄 알았나
(웃음)그...그랬나 보다
인정하기 싫은가보다.


음. 황지수가 옆에서 도와달라. 말문이 좀 트일지도 모르겠다. 영남대 진학이 예정되어 있다가 수능 성적을 못 받으면서 졸지에 '재수생'이 됐다. 어쩌면 1년을 통째로 날려버린 셈인데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영남대에서 연습생처럼 뛰었다. 초반에는 감독님께서 훈련도 같이 시켜주며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하지만 시즌 중엔 아무래도 경기에 뛸 선수 위주로 팀이 운영되지 않나. 그러다 보니 개인 운동으로 채우는 시간이 많아지고, 연습경기도 거의 못 뛰고…. 시간이 갈수록 좀 지쳤다.
'멘붕' 오지?
(끄덕끄덕)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체중도 3~4kg 정도 불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기들에 비해 뒤처진다는 생각에도 많이 힘들었겠다
아, 동기 중에 경기 뛰는 선수가 많지 않아서 좀 위로가 되긴 했다. (웃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1년만 있으면 다시 축구할 수 있으니까. 경기에만 나서면 다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포철중-포철공고 등 포항 유소년 시스템을 거친 프랜차이즈 선수다. 힘든 시기도 겪었고, 그만큼 포항에 대한 애착도 강했을 것 같다. 포항 유니폼을 처음 받았을 때 기분도 남달랐을텐데
어려서부터 포항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다. 사실 작년 드래프트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로 미룰 생각도 했지만, 이왕 뛸 거 빨리 부딪혀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포항이 워낙 미드필드가 강한 팀이라, 당장 경기에 뛸 거란 기대도 안 했다. 그냥 2군에서 열심히 하면서 기회가 왔을 때 꼭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명주는 2군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싹이 보인다랄까, 굉장히 잘했다. (신)진호도 그렇고 영남대 출신들이 김병수 선생님께 배워서 그런지 기술적으로 갖춰져 있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1군 데뷔가 빨랐다. 4월 성남 원정에 그것도 선발 출장이었다. 경기 앞두고 각오가 대단했겠다
일단 열심히 뛰는 건 당연한 거고, 감독님이 원하시는 걸 잘 소화해내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경기장에서 나섰다.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면 프로 데뷔전 때는 대부분 눈앞 1미터밖에 안 보이고, 정신없이 뛰다 보면 경기가 끝나버린다고 하더라
처음엔 제정신 갖고 뛰지 못했다. (웃음) 그저 몸이 따르는 대로 움직였다.
나도 데뷔전 때는 정말 앞이 캄캄했었다.
전반전은 정말 그랬는데, 후반 들어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조금씩 뛸만해 지더라. 그러다 운 좋게 도움도 기록했다. 그렇게 패스가 잘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상대 수비가 실수도 하고 아사모아가 워낙 빠른 덕에 골로 연결이 됐다.
확실히 신인은 운이 좀 따라주는 게 좋다. 데뷔전 망치면 정말 힘들고, 자칫 1~2년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줄곧 주전으로 기용됐고, 6월 제주와의 홈경기에선 데뷔골까지 넣으며 군에 입대한 김재성의 빈자리를 확실히 메워줬다. 새로운 '황선홍의 황태자'라 불릴 만했다
5월 전북과의 홈경기가 가장 큰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진 '반짝 활약'일 수 있었는데, 전북 같은 강호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내 몫을 잘 해낸 덕에 감독님께 신뢰를 받은 것 같다.
감독님이 명주를 너무 예뻐 하신다. 감독님 18번 물려받은 (고)무열이 물리치고 애정을 완전 독차지했다. '황'명주라고 불린다. 패스 미스 해도 혼 안 난다. (웃음)
(웃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렸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을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경기할 때마다 내게 오셔서 '맘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며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늘 감사하다.


자연스레 신인왕 후보 0순위로 꼽히고 있는데
상에 대해 그렇게 많이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받고 싶다.
2004년 (문)민귀 이후로 8년 동안 포항에서 신인왕이 나온 적이 없으니, 이번엔 네가 꼭 받아야 한다. (웃음)


올림픽을 앞두고 잠시 홍명보호에 발탁된 적도 있었다. 결국 런던엔 가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웠을 것 같다. 특히 대학 시절 허송세월 없이 1년 먼저 주목받고 잘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만 했을텐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나 보다 (웃음)


암튼 진땀나는 인터뷰다. 재밌는 얘기도 들었다. 축구 선수가 된 계기가 예쁜 여자 만나기 위해서라던데
(당황하며)아…. 계기까지는 아니고 원동력 정도랄까. (웃음) 사실 고등학교 때 같이 뛰던 애들도 그렇고 나도 여자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해서, 같이 몰려다니며 개인운동하고 그랬다. 좀 독특한 분위기였다.


프로에 진출하고 성인이 됐으니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 여자친구 없나
(손사래 치며) 지금은 여자친구 만날 때가 아닌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좀 빨리 결혼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그냥 그렇다.
빨리 하는 게 낫다. 운동 선수는 내조 잘해주는 좋은 여자 만나는 게 중요하다
이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다. 곧 예쁘고 날 잘 챙겨주는 여자 만나야지.


[사진=포항 스틸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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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톱은 '신의 한 수'였다


각자의 얘기를 좀 들었으니 이제 포항에 대해 말을 나눠보자. 시즌 초에 포항이 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팀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았다. 특히 최전방 공격수들이 힘들었다. (박)성호도 그렇고, (고)무열이도 그렇고 골이 잘 안 터졌으니까.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못 간 것도 너무 아까웠다. 부뇨드코르(우즈벡)와의 최종전만 잘 치르면 되는 거였는데. 일방적 응원에 경기장 분위기도 좀 산만해서 정말 힘든 경기였다. 요즘 같은 분위기만 일찍 잡혔더라면 우승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 했는데 아쉽다.


방금 얘기했지만 요즘 포항 정말 잘나간다. 전반기 막판 15경기에선 10승 1무 4패로 K리그 전체 1위였고, 후반기 스플릿 첫 경기에서도 수원을 원정에서 잡았다. 이런 상승세의 계기는 역시 6월에 황선홍 감독이 꺼내들었던 제로톱 카드였다. 처음 제로톱 전술이 채택됐을 때 어땠나?
그전에도 감독님이 전술 변화를 줄 것이라 얘기를 하셨다. 좀처럼 골이 안 터지니 전방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서울전(1-0 승)에 처음 제로톱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 팀 미드필드에 좋은 자원이 많고, 공격수들도 부진하던 때였으니까. 그 상황에선 우리에게 가장 좋은 전술이었다. 덕분에 (황)진성이를 비롯해 팀 전체 공격력이 살아나면서 자신감까지 붙어 탄력을 받았다. (박)성호까지 좋아지면서 원톱 체제로 변환되며 상승세가 이어졌다.


제로톱 전술을 구사하는 데 있어 이명주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맞다. 명주가 있어서 우리 전술이 훨씬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경기 때마다 선수 구성이나 컨디션이 달라져 애를 먹을 수 있는데, 명주는 어느 포지션에 갖다놓아도 잘 해준다. 패스 타이밍도 워낙 빨라서 종종 우리도 못 따라갈 때도 있다. (웃음)


솔직히 신인이란 처지에서 큰 부담이었을 텐데
크게 부담되진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내가 원래 패스 플레이를 좋아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우리팀 미드필더 형들이 워낙 잘하니까 거기 묻혀서 하면 됐었다. (웃음)



“형이 뛰어 들어가는데 그렇게 고맙더라구요”


박성호가 기세를 올린 덕에 전술도 제로톱에서 4-2-3-1로 다시 변했다. 이와 함께 둘이 함께 더블 볼란테로 서게 됐는데 그 힘이 대단하다. 궁합이 잘 맞는 건가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명주도 활동량이 많은 편이어서 잘 맞는다. 명주가 공격에 나서면 내가 커버 플레이를 펼쳐주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체력이 떨어져서 '더는 힘들어 못 뛰겠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수형이 커버를 들어가는데 속으로 정말 고맙더라.(웃음) 형이 수비력이 좋으니까 수비 걱정도 없다.
뭐야.(웃음) 그건 넌도 마찬가지다. 아, 이런 점도 있다. 아무리 후배라도 선배의 지적에 기분이 나쁠 수 있고, 프로니까 자기 생각을 고집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명주는 그런 것들을 다 수긍하고 받아들여 준다.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나지만 성격상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서 힘든 게 없다. 솔직히 9살이면 많이 나는 것 같지도 않고.(웃음)


또 이명주는 어린 시절부터 포항과 황지수의 경기를 보면서 자랐을 텐데
내가 고등학교 때는 수비수였는데, 대학 들어가면서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 그 때 감독님이 '너는 포항에 들어가면 지수 자리에서 뛰게 될 테니 보고 많이 배우라'고 하셨다.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뛰게 돼서 참 좋다.


주장으로서 황지수는 또 어떤가. 전반기 주장이었던 신형민과 비교한다면
말 잘해라. (웃음)
둘 다 카리스마가 있는데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신)형민이형은 좀 조용한 편이라고 할까. 경기 중에 별말 없이 필요한 건만 딱딱 지적한다. 반면 지수형은 게임 하다 안 좋은 부분이나 실수가 있으면 다독여주면서 어떻게 하라고 세세하게 말해준다. 다정다감한 스타일이다.


후반기 스플릿을 앞두고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물론 최용수 서울 감독조차 포항을 우승 후보라고 지목했다
홍 감독님은 우리 팀 출신이셔서 그런 것 아닐까. (웃음) 솔직히 요즘 같아선 어느 팀과 붙어도 안 질 것 같다. 일주일에 세 경기씩 하고 싶을 정도다. 지금은 비록 5위지만 충분히 올라갈 자신이 있다.
초반 팀이 안 좋을 땐 경기에 나갈 때 '어떻게 해야 잘할까'란 걱정을 많이 했다. 요즘엔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뿐이다. 그런 승리욕에 팀이 똘똘 뭉치는 느낌도 들고.
초반에 수원-서울-제주-전북 등 강팀들을 상대로 원정 4연전을 치른다. 일단 수원전은 잘 넘겼고, 나머지 경기에서 승점 관리만 잘한다면 충분히 우승에 도전해볼 만하다. 특히 막판엔 홈경기가 몰려 있어 어찌 보면 더 유리할 수 있다. 경남과의 FA컵 결승도 스틸야드에서 열리니 충분히 자신 있다.


공격력도 좋아졌지만, 최근 경기에선 포항 특유 패스 플레이가 돋보인다. 포항 패스 축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 걸까
포항이 워낙 유소년 시스템이 좋지 않나. 어려서부터 패스 위주의 경기를 배우고, 또 프로에 와서도 그렇게 하니 능력이 더 잘 발휘되는 것 같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감독님들의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패스나 미니게임을 강조하신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기본적으로 포항 미드필더들은 패스 플레이에 대한 마인드가 갖춰져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풀어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도 지금은 공격형 미드필더인 (황)진성이 역할이 크다. 진성이가 앞에서 공을 잘 연결해주니까 뒤에 있는 우리도 더 편하게 발을 맞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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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야드는 나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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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얘기하다 보니 벌써 훈련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둘 다 남다른 사연과 시련을 겪었다. 그렇기에 경기장 나서는 순간순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금은 좋은 흐름을 타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자꾸 생각한다. 지난해 포항에 돌아왔을 때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좀 잘한다고 안주하지 않고 초심을 지키고 싶다.
나 역시 신인인데다, 좀 잘하다 보면 자칫 나태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이루려 한다. 대학 시절엔 포항 1군에서 뛰는 게 목표였다. 지금은 주전급으로 뛰고 있으니 다음은 신인왕이고, 대표팀에도 가고 싶다. 최종 목표는 분명히 있지만 미리 얘기하고 싶진 않다.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나가고 싶다.


황지수와 이명주에게 포항이란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스틸야드가 정말 좋다. 프로선수라면 연봉 많이 주는 팀에 가는 게 당연하겠지만, 돈보다 팀에 대한 애착이 먼저인 선수도 있다. 데뷔 이래 줄곧 포항에서만 뛰었는데, 포항에서 은퇴경기도 하면서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다. (김)기동이형처럼 한 팀에 오래 뛰면서 아름답게 은퇴한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나도 꼭 그렇게 되고 싶다. 기동이형 나이만큼은 못하더라도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뛸 것이다. 아, 물론 포항선수로서 A대표팀에도 꼭 한번 다시 뽑히고 싶다.
나도 스틸야드가 지금껏 뛰어본 경기장 중 최고의 축구장이었다. 서포터스도 그렇고, 해병도 응원도 워낙 오래 봐서 좋다. 포항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고, 실력도 키워서 언젠간 해외 무대에서도 활약하고 싶다. 그리고 나서 포항에서 멋지게 은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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