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지난 25일 지식경제부 기자실은 일대 혼란을 빚었다. 혼선을 야기한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전력 수급을 책임지는 공기업 한국전력거래소.
오후 2시가 넘어서자 예비 전력은 300만kW대로 떨어졌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일부 언론은 '예비 전력 400만kW가 붕괴됐고 관심 단계에 진입했다'는 내용을 속보로 띄웠다. 국민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자발적 절전을 유도하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분주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이후 몇 분 만에 예비 전력은 400만kW대를 회복했고 기자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시각 전력거래소는 다른 이유로 바빴던 모양이다. 일시적으로 예비 전력이 300만kW대로 떨어졌지만 관심 단계 경보가 '발령'되지 않았다며 많은 언론을 상대로 기사 수정을 요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이에 대해 지경부 고위 관료는 "사실 오늘 같은 날 관심 단계가 발령돼 국민이 위기의식을 느껴 자발적으로 절전에 동참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도 없다"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전력거래소 일부 직원의 전문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관심 단계 발령 충족 요건을 묻자 홍보팀은 제대로 답을 못했다. '몰라서'였다. 전력 등급은 예비 전력에 따라 준비→관심→주의→경계→심각으로 나뉜다.
이날은 400만kW 미만의 상황이 20분 이상 지속되지 않았고 350만kW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심 단계는 발령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정해놓은 관심 단계(예비력 300만~400만kW)에 진입할 만큼 아찔한 상황은 분명했다.
공무원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면피주의'와 '비전문성'의 단면을 본 씁쓸한 하루였다.
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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