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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긴급 진단│그 많던 월급은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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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근무조건과 상사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월급 때문이다. 손에 급여를 쥐는 그 순간이야말로 다시 또 모진 한 달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월급은 조금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며칠 만에 ‘0’으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다르게 사치품을 구매한 일도, 특별히 좋은 음식을 먹은 적도 없는데 월급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여기, <10 아시아>가 꾸며본 직장생활 1년차 미혼 여성의 가상 일기가 준비돼 있다. 과연 그 많던 월급은 누가 다 먹은 것인지, 찬찬히 되짚어 보도록 하자.


직장인 긴급 진단│그 많던 월급은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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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월급날♡
오늘따라 출근길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 창문을 활짝 열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노트북 옆에 얌전하게 놓인 휴대폰에 눈길이 머물렀다. 참지 못하고 은행 앱을 켜서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시계는 이제 막 오전 7시 45분을 지나고 있었고, 월급은 11시나 돼야 입금될 터였다. 당연히 잔액은 ‘0원’ 그대로였지만, 사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떠올라 다이어리를 펼쳤다. 며칠 전 홍대 앞을 지나다가 눈여겨 봐둔 구두가 생각났다. 주인 언니에게 25일 후에 내가 꼭 사러 올 테니 절대 팔지 말라고 일러두었으니 오늘 당장 달려가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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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 이메일로 도착한 월급 명세서를 보고 분노가 차올랐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건보료(건강보험료)는 왜 이렇게 많이 떼어 가는지. 이보시오, 의사 양반! 지나치게 튼튼해서 병원 한번 안 가본 사람한테 건보료 5만 3천 원이 웬 말이요! 거기에 국민연금 8만 5천 원, 고용보험비, 소득세까지….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월세 납부일입니다”라는 집주인의 문자까지 잊지 않고 도착했다. 어서 돈을 모아서 전세라도 마련해야…. 주먹을 불끈 쥐며 훗날의 설욕을 다짐했으나, 지난달 카드값으로 빠진 30만 원을 확인하자 나는 아마 안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스비와 전기세, 인터넷과 휴대폰 요금도 부담스러운 살림에 신용카드는 사치였던 것이다. 그래도 자식된 도리는 해야 할 것 같아 엄마에게 용돈 10만 원을 부쳐 드렸다. 200만원이었던 월급이 벌써 절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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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월급날로부터 10일경과
월급이 20만 원 가량 남았다. 충격에 사로잡혀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후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을 만나 누구 월급이 더 형편없는지, 누구 회사가 더 거지 같은지, 누구 상사가 더 진상인지 성토대회를 여느라 술값이 좀 들긴 했다. 파스타나 삼겹살도 몇 번 먹었고, 야근을 마친 후 호기롭게 택시를 타고 귀가한 날들도 제법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게, 그리 큰돈이었나? 내가 남의 돈 벌어 먹고사느라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그 정도도 쓸 수가 없단 말인가? 잘한 일이었다고 애써 냉정해져 보려 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조용히 주먹으로 입을 막았다.

7월 15일: 월급날로부터 20일경과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천오백 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체크카드를 내밀었는데, 결제 오류가 난다는 거였다. 마그네틱 고장이다 싶어 옷에 몇 번 문지른 후 다시 카드를 건넸으나, 점원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서둘러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돈.이.없.다. 잔액이 ‘0원’이란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나 싶어 집으로 돌아와 옷장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여름이니까 하나 있어야 한다 싶어서 샀던 꽃무늬 원피스, 브랜드 세일 때 구매했던 블라우스며 스커트들이 눈에 띈다. 입으면 뚱뚱해 보이는 것 같아 그대로 처박아 둔 것들로, 전부 비싼 옷은 아니다. 다시 화장대로 시선을 돌렸다. 14일 후 피부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는 에센스 병 하나. ‘요즘 부쩍 늙은 것 같다’는 친구들 말에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산 화장품이다. 정작 사놓고는 너무 아까워 몇 번 발라보지도 못했지만. 그러다 얼마 전,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종류 상관없이 맥주 세 묶음에 만원이라는 문구에 홀려 몇 세트나 사왔던 일이 떠올랐다. 속상해서 그거라도 들이키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단 한 캔도 남아있지 않다. 사러 가려고 열어 본 지갑 속에는 꾸깃꾸깃한 영수증들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허탈해져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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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월급날 이틀 전
돈 없다고 안 먹고 안 사면 뭐하나. 인륜지대사는 무시할 수가 없다. 친구 아들 돌잔치, 김 대리님 집들이, 엄마 친구 딸 결혼식까지 참석하느라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사람 노릇 하고 살기가 참 쉽지 않다. 후.... 나는 언제쯤 돌려받을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데!!!!!!! 어쨌든 카드 한도에 아직 여유가 있는 것 같아 옆자리 동료 K와 함께 요가 학원 3개월 코스에 등록했다. 한 달 수강료는 10만 원, 석 달은 27만 원이니까 훨씬 이득이다. 지난번에 헬스클럽은 석 달을 끊어놓고 10일을 채 못 채웠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아디*스에서 위아래 세트로 요가복도 한 벌 구매했으니까 말이다.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운동하리라 나 자신과 약속하는 의미로, 한 봉지 가득 빵을 사서 귀가했다. 띠릭, 띠릭, 띠릭. 신용카드 결제 문자가 연속해서 휴대폰으로 날아든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다. 이틀 뒤면 월급이 내 품 안에 들어올 것이고, 다음 달부턴 신용카드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가만, 내가 이 장면을 어디서 봤더라? 데자뷔가 느껴지는 건 분명.....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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