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검찰은 2010년 7월 불법사찰 자료에 대한 증거인멸을 전후해 박 전 차관이 차명폰 및 본인의 휴대전화로 증거인멸을 지시한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과 통화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문제의 차명폰이 박 전 차관의 비서관을 지낸 이모 국무총리실 서기관(39·연구지원팀장)의 지인 명의로 개설된 점에 주목해 이씨의 주거지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두차례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명폰과 통화가 오간 최 전 행정관의 차명폰을 서유열 KT사장(56)이 개설해 준 사실을 확인해 이달 초 서 사장도 불러 조사했다. 서 사장은 “(친분이 있는)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으로부터 ‘업무에 잠깐 쓰겠다’는 요청을 받고 차명폰을 제공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불법사찰과 관련 등장한 차명폰들의 통화내역을 수차례 복원해 추적했으나 2010년 7월 15일 이전 시점의 통화내역은 확보하지 못했다.
박 전 차관은 전날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과의 연관성도 의심받고 있다. 박 전 차관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근무하며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설치를 준비하다 불법사찰·증거인멸이 이뤄질 당시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이 박 전 차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단서가 포착될 경우 그간 숱하게 제기돼 온 민정수석실 등 청와대 조직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불법사찰 자료 증거인멸 지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진경락 전 과장은 1차 수사 당시 실형 선고 후 수감생활을 하며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현 정권이든 MB (이명박 대통령)든 모두 불살라버리겠다"며 민정수석실 인사들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재수사팀도 진 전 과장의 교도소 접견기록을 통해 이 같은 발언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검찰은 진 전 과장 측근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확보한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추가 불법사찰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문제의 외장하드디스크엔 여야를 불문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권에 비판적 입장을 지닌 인사들에 대한 불법사찰 정황이 다수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외장하드의 2009년 9~10월 ‘해야 할 일’ 폴더엔 친노계 백원우 의원 등에 대한 동향·지원그룹 보고 지시가, 앞서 같은 해 1월 ‘해야 할 일’ 폴더엔 친박계 현기환 의원에 대해 지시를 내린 흔적 등이 담겨 있다. 검찰은 추가 발견된 문건에 담긴 내용들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직무 내용에 해당하는지 등 불법성을 확인하기 위해 특수부·형사부 등 5개 검사실의 인력을 수사팀에 보강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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