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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 아닌 막장…'카바 토론회'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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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끝장토론을 기대했지만 막장토론으로 끝났다. 송명근식(式) 심장판막수술 '카바(CARVAR)' 토론회다. 이날 토론회는 카바수술 반대파 의사 10여명이 송명근 교수 1명을 집단 따돌림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일 부산 벡스코에선 '카바수술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공식적으로 카바수술에 반대하는 두 학술단체 대한심장학회와 대한흉부외과학회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했다.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첫 연자로 나와 "내 수술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자리임을 알고 있어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 자리에 단 한명이라도 현재를 의심하고 미래를 꿈꾸는 후학이 나와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가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송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종합적 대동맥 근부 및 판막성형술(카바)이 다른 의사들이 시행하는 고전적 판막치환술보다 좋다는 근거를 대기 시작했다. 나은 생존율, 적은 부작용 등 장점이 나열됐다.
송명근 건국의대 교수(왼쪽)가 20일 열린 카바수술 전문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송명근 건국의대 교수(왼쪽)가 20일 열린 카바수술 전문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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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막치환술은 선천적 판막이상 환자에게 인공판막을 끼워주는 수술법이며 일종의 '표준치료법'이다. 반면 카바는 송 교수가 고안한 '링'을 이용해 판막기능을 복원하는 '성형술'이다. 거의 모든 심장수술 의사들이 판막치환술을 하며, 카바수술을 하는 의사는 송 교수를 포함해 몇 안 된다. 지금까지 약 1000명 정도 환자가 카바수술을 받았다.

송 교수에 이어 연자로 나온 김덕경 성균관의대 내과 교수(삼성서울병원), 배종면 제주의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겸임연구위원), 정철현 울산의대 흉부외과 교수(서울아산병원)는 카바수술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김 교수는 카바수술 보고서에 조작 및 오류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수술이 불필요한 환자에게 마구잡이식 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게 의사로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카바수술의 성적을 '정부차원에서' 분석했던 인물이다. 연구원은 배 교수의 보고서를 토대로 2010년 초 카바수술 중단을 복지부에 건의했다.

그는 통계적 기법을 통해 카바수술이 기존 수술보다 위험하다고 결론 내렸다며, 조사 과정에서 건국대병원이 불리한 자료를 은폐하거나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카바수술을 받고 문제가 생긴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또 과학적 논문이 부족하고 논문상 데이터가 불일치 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그 역시 자료 조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송 교수는 다시 연단에 나와 "전부 사실이 아니다. 이렇게 불신이 심한지 몰랐다. 제안하건대 건국대병원의 모든 자료를 오픈 할테니 조사해달라. 결과가 (내가 말한 것과) 다르다면 교수직을 사직하겠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송 교수는 "앞서 3명의 발표 내용에 대한 반박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좌장을 맡은 송재관 울산의대 심장내과 교수(서울아산병원)는 "충분히 시간을 줬다"며 거절했다.

송 교수는 이에 강하게 항의하며 준비해온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워놓고 막무가내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제 발표자들의 슬라이드는 사전에 공개됐기 때문에, 송 교수가 숫자 하나하나에 토를 달아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다.

그러자 좌장과 토론자들은 "당장 그만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너무 억울해 할 말은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60세 노(老) 교수에게, 까마득한 40대 후배들은 '가만 계세요', '말을 끝까지 들으세요'라며 쏘아붙였다.

송 교수가 발표를 제지 당하자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한 복지부 공무원이 보다 못해 "이야기 좀 들어봅시다"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토론자 한 명이 "당신은 누구냐"며 고성을 지르는 등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송 교수는 토론회가 끝나고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앞에 3명이 발표한 거 들으면 제가 완전히 사기꾼 아닙니까. 자료 조작한 의사죠, 없는 데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제가 그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하고 또 그들이 재반박하는 게 토론 아닙니까. 자기들 이야기하고 저를 사기꾼으로 몰아놓고 끝내겠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송 교수는 어렵사리 십여분의 발표 시간을 얻었다. 그가 읽어 내려간 반박 내용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앞선 3명의 의사가 발표한 내용 중에는 의도적 짜깁기, 일부만 발췌하기 등 또 다른 '조작'이 대부분이란 게 송 교수의 주장이었다. 발표자의 해명이 필요해보이는 황당하거나 충격적인 왜곡도 많았다.

"여기 보이는 이 사망률, 이 부분을 0이라고 표시하고 계산하면 이렇게 나오는데, 세상에 이런 통계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평균과 여기 평균을 더해 그것의 평균을 내면 전체 평균이 됩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거에요"

결론적으로 송 교수와 나머지 의사 3명은 동일한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은 셈이다. 이에 송 교수는 "모든 자료를 다 공개할테니 조사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반대편 의사들은 "시간 끌기다", "누가 가져오냐"고 비아냥 거렸다.

토론회 막바지에 들어서야 좌장인 송재관 교수는 자신을 포함해 많은 의사들이 카바수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 말했다.

새로운 의술이 표준화 되려면 과학적 무작위 통제 연구와 이를 정리한 논문이 있어야 하지만, 송 교수는 그런 '과학적 절차'를 무시하고 카바수술이 안전하다고만 주장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게 핵심이다.

이에 송 교수는 "애초 카바수술을 시작할 때만해도 기존 수술법의 '개선'일 뿐이어서 그런 연구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며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전향적 무작위 통제 연구를 시작하자"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즉, 카바수술이 안전한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송 교수 자의로 카바수술을 계속 하도록 허용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불가피하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3년전 카바수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조건을 걸어 환자로부터 진료비를 받아도 좋다는 '조건부 비급여'를 고시했다. 고시기간은 오는 6월 종료된다.

이 때가 되면 복지부는 그간의 연구결과로 카바수술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송 교수의 반대로 지금까지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지부로부터 제시된 연구 디자인을 따르자면, 현재 송 교수가 수행하는 카바수술 대상 환자의 95%는 제외된다. 매우 제한된 환자들만 연구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한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게 송 교수의 주장이다.

조건부 비급여 종료 후 복지부가 카바수술을 금지한다면, 송 교수는 '카바수술'이란 명칭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대동맥판막성형술'의 한 종류로 분류해 자신의 수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송 교수는 이것이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평원은 '고시 위반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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