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광역시 소재 K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김영남(46ㆍ가명)씨는 남들이 출근하는 오전 8시에 집으로 퇴근한다. 먹는 둥 마는 둥 간단히 요기를 하고 서둘러 잠을 청한다. 커튼을 겹겹으로 치고 침대에 눕지만 때를 놓친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남편이 뒤척이는 모습에 아내는 서둘러 두 애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간다. 김씨는 밤낮이 뒤바뀐 라이프 사이클 탓에 피곤을 달고 산다. 야간조 근무를 하러 밤 8시께 집을 나설 때는 건강 보조 식품을 챙기는 게 습관이 됐다.
최근 노동계 최대 이슈로 꼽히는 '장시간 근로'를 둘러싼 정반대의 현실이다. 기자가 찾아 간 현장의 목소리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렸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다. 연간 2116시간(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49시간)에 비해 무려 360시간이 많다.
정부는 노동 시간을 줄여 선진국 수준으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장시간 근로 문제는 발상만 전환한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콜롬버스의 달걀'"이라고까지 말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자'는 정부의 취지에 노동계와 경영계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현장 근로자들은 밤샘 근무의 피로를 호소했다. H사 현장 근로자는 "솔직히 야간 근무로 인해 만성피로, 호흡기 질환,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동료들이 많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주야간 2교대를 없애고 주간 연속 2교대 도입에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밤샘 근무를 없애는 데도 걸림돌은 임금과 생산성이다. K사 관계자는 "밤을 새면서 일을 하는 관행을 없애는 것에 찬성하지만 기존 대비 차를 덜 만들게 된다면 임금 역시 줄어야 맞다"며 "회사입장에서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라인 증설과 같은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완성차 회사에서 시행 중인 주야간 2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 혹은 3조 2교대 등으로 교대제를 개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시간 근로 문제에서 휴일 특근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휴일 근로가 연장 근로 한도(주 12시간)에 포함되면 주당 근로 시간은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23.5% 감소한다. 이럴 경우 노동계는 근로 시간이 줄어든 만큼의 임금 보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은 당장 생산성 감소에 따른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입법을 추진 중인 정부의 방침에 "전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 한 것"이라며 노사가 함께 반발하는 이유다. H사 노조원은 "주말에 집에서 놀면 뭐합니까. 눈치만 보이죠. 집에서도 솔직히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 오길 바랍니다. 현실이 그래요"라고 씁쓸히 웃었다.
울산·광주=김혜원 기자 kim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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