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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구종현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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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러기어린이집 앞/가로수 은행나무/그 가로수 밑둥치에/여선생이 심었을까 하눌타리/넝쿨손 가는 줄기들이/소나기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비늘끈을 타고/가지 잘려나간 몸통을 타고/이층 창문까지/아니 빨간 지붕까지 올라갈 모양인데//가던 걸음 멈추고/멀거니 서 있는 사내 하나/누굴까/지나가던 바람이 멈칫, 거리다 간다

■ 스마트폰은 1초의 지연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번개같은 속도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얘기를 꺼내는 사람과 그 얘기를 듣고 곱씹어야 하는 사람의 사이에, 시간차가 없다. 실시간이고 동시소통이다. 속이 시원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와중에 뭔가 사라져버린 것이 있다. 망설임, 음미, 돌이켜 생각하는 마음, 그리움같은 것... 예전엔 하눌타리 편지같은 게 있었다. 하눌타리는 하늘을 타고 올라 7, 8월 더운 날에 노랑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어린이집 여선생이 누군가를 사모하여 하눌타리를 심고, 그것이 그 여름 자라올라 지붕까지 닿을 기세가 되었다. 그리움이 이토록 치솟았으니, 지금 이 여인은 지붕처럼 빨갛게 타올랐을 것이다. 이 그리움에 켕겼던가, 사내 하나가 지나가다가 문득 멈춰 선다. 이 사람이야? 바람이 그 얼굴을 훔쳐본다. 느려터진, 환장할 그 사랑을 우린 어디로 다 날려보냈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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