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 스테디셀러 뮤지컬 '쓰릴 미' 뜯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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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감옥의 가석방 심의위원회. 수감자인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가 진행 중이다. '나'를 심문하는 목소리들은 34년 전 '나'와 '그'가 저지른 충격적인 범죄에 대해 묻는다. 교외 숲 속에 버려진 어린 아이의 시체,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 안경. '나'는 '그'와 함께 12세 어린이를 유괴해서 처참하게 살해하기까지의 상황을 소름 끼칠 정도로 담담히 이야기한다. 20세가 되기 전에 법대를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지닌 '나'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충무아트홀 중극장블랙에서 공연 중인 '쓰릴 미 Thrille Me'(제작 뮤지컬해븐)는 2007년 한국 초연 이후 90%가 넘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뮤지컬 계의 스테디 셀러로 떠오른 작품. 1929년 미국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설적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12살 어린이가 손발이 뒤로 묶여 있고 얼굴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진 변사체로 발견된다. 살인범은 놀랍게도 부족할 것 하나 없는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19세의 두 청년, 레오폴드와 리처드였다. 니체의 초인론에 심취해 있던 이들이 단지 '재미'를 위해 저지른 끔찍한 살인 사건은 미 전역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 승률을 자랑하던 변호사 클라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의 변호로 이들은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클라렌스 대로우가 재판정 최종 변론에서 말한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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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미국인들의 머리 속에 생생히 잔존해 있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가 뮤지컬로 옮겨진 것은 2003년이다. 뉴욕 미드타운 인터내셔널 씨어터 페스티벌에서 '쓰릴 미'라는 이름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유괴, 살인, 동성애 등의 소재를 연인 관계인 두 남자의 치열한 심리 묘사로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또한 34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극과 극을 오가는 인간의 내면을 긴장감 있고 밀도 높게 표현한 점이 큰 화제가 되었다.


'쓰릴 미'는 '반짝반짝' 빛나는 화려한 뮤지컬의 전형에서 살짝 벗어난 실험적인 면이 돋보이는 뮤지컬이다. 총 18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단지 피아노 한 대의 반주에 의해 담담히 들려지며, 무대 역시 90분 러닝 타임 내내 큰 변화는 없는 '미니멀리즘 Minimalism'을 추구한다. 그러나 두 캐릭터의 명징한 대비와 절제된 연기, 거기에 끝까지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내러티브 전개 등 '쓰릴 미'는 철저히 연극적인 구성을 통해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약점을 완벽하게 만회한다. 또한 기존과는 달리 4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후면 벽체의 움직임으로 각기 다른 시ㆍ공간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한 것은 이채롭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벽체는 마치 '나'와 '그'의 팽팽한 심리 싸움의 흐름을 대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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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쓰릴 미'는 스타 탄생의 산실로 통한다. 류정한, 최재웅, 김무열, 이율, 김우형, 김산호 등 현재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다섯 번에 걸친 '쓰릴 미'의 '나'와 '그'를 통해 비로소 탄생됐다. 이번에는 중견에서 이번이 데뷔 무대인 '초짜' 신인 배우까지 다양한 버전의 '나'와 '그'가 나온다. '나'는 배우 김재범, 정상윤, 전성우, 손승원이, '그'는 배우 장현덕, 김성일, 이정훈이 맡았다. 각각 차별되는 배우 커플이 연출하는 색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것 또한 '쓰릴 미'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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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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